지난 2월 세계 패션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에 한복을 입은 모델들이 등장했다. 분명 익숙하지만, 우리가 알던 한복과는 조금 달랐다. 어깨선을 과감하게 드러낸 오프숄더 한복 드레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수백 개 깃털로 장식된 은색 원삼, 캉캉 드레스처럼 층층이 겹쳐 우아한 볼륨을 완성한 무지기치마까지. 뉴욕에 기반을 둔 브랜드 ‘더 한복(THE HANBOK)’의 박신효 대표(사진)가 뉴욕패션위크(NYFW)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전례 없는 K웨이브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가장 한국적인 옷이 가장 세계적인 도시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 풍경을 만들어낸 주인공, 박 대표를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그는 이번 쇼를 “뉴욕에서 한복이 다시 태어난 순간(Hanbok, Reborn in New York)”이라고 정의했다.
▷뉴욕패션위크 정식 런웨이에 우리나라 복식이 오른 건 처음인데요.“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사실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거든요. 뉴욕패션위크가 시작되기 두 달 전 전시 기획사 제이투브랜드(J2 Brand)의 제니 청 디렉터가 런웨이에 한복을 올리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보통 길게는 1년간 쇼를 준비한다는 걸 감안하면 너무 촉박했죠.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복이 한국인을 넘어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옷이 되길 바라던 제게 뉴욕은 완벽한 런웨이였으니까요. 잠을 줄이면서 15벌의 옷을 준비했죠.”
▷언제부터 한복을 디자인했나요.
“저는 전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처음부터 한복에 매료된 건 아니었습니다. 전공도 음악교육이었고요. 전주에서 전통 한과점을 운영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온 부모님이 한복집을 하겠다고 했을 때 마음속으로 ‘미국에서 한복을? 말이 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게 한복은 우리의 전통 의복일 뿐이지 꼭 입고 싶은 옷은 아니었거든요.”
▷어떤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나요.
“처음엔 부모님을 잠시 도와드리려고만 했어요. 그래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한국 복식을공부했는데, 오방색의 철학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양과 달리 나를 중심으로 방향이 정해지고, 그 방향마다 각기 다른 오행과 색깔이 담겨 있다니….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때 작곡가의 의도를 잘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한복의 뿌리를 제대로 알고 나니 이를 새롭게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한복을 재해석하고자 했나요.
“한복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는 ‘의무적인 존중’을 넘어 ‘자연스러운 존중’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것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내려놓아도 옷 자체가 객관적으로 아름답고 입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어야 미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알던 한복과 다른데요.
“음악교육을 공부하며 접한 서양 연주복의 디자인과 색감 등 여러 요소를 많이 차용했습니다. 오프숄더 한복이 대표적이죠. 바이올린 연주복은 어깨선을 드러내는 게 일반적인데, 그런 요소를 넣어 미국에서도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번 쇼에서 집중한 부분이 있나요.
“이번 패션쇼의 주제가 ‘웨딩드레스’였습니다. 한국적인 모티브를 유지하되, 미국 결혼식에서도 자연스럽게 입을 수 있는 요소를 더했습니다. 특히 미스 USA가 런웨이에서 입은 드레스는 조선시대 왕비가 예복으로 입었던 원삼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여기에 깃털을 더해 날개처럼 연출했죠. 새처럼 날아올라 세계 곳곳에 평화를 퍼뜨렸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서울시 무형유산 김인자 장인과도 협업했습니다.“이번 쇼는 수세기에 걸친 한복의 역사를 한 무대에 담아낸 행사였습니다. 제가 앞부분에서 ‘뉴욕에서 재탄생한 한복’을 보여줬다면, 김인자 선생님은 뒷부분에서 ‘한복의 뿌리’를 보여주는 듀얼 쇼케이스 형식이었죠. 마지막에 화려한 금박이 수놓인 선생님의 ‘홍원삼’이 등장했을 때 우리 한복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런웨이 뒤의 숨은 공신도 있었나요.
“신라 금관을 모티브로 한 왕관을 액세서리로 썼는데,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주얼리 아티스트 정재아의 솜씨입니다. 미스 USA가 본인의 왕관을 벗고 금관을 써볼 정도로 외국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죠.”
▷앞으로 어떤 한복을 짓고 싶나요.
“특별하지 않은 한복이요. 한복이 특정한 이벤트 때 마음먹고 입는 옷이 아니라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옷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세계화란 모두에게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저녁 메뉴를 고를 때 일상적으로 스시를 떠올리듯, ‘한복 입을까?’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날이 오기를 꿈꿉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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