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송전·인프라, 유럽 원자력…에너지 독립운동 바람에 韓 '잭팟' 기대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입력 2026-04-21 17:14   수정 2026-04-21 17:40

이란 전쟁으로 세계 각국의 ‘에너지 자립’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현대사회의 근간인 에너지 대부분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데 따르는 위험이 크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어서다.

가장 잰걸음을 보이는 곳은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내에서 석유, 석탄, 천연가스 생산을 늘리고 대규모 에너지 인프라와 전력망을 확충하도록 하는 대통령 각서(메모랜덤) 5건을 한꺼번에 발표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에 제정된 국방물자생산법(DPA) 303조를 이용해 연방정부 자금을 이 분야에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 美, 정부가 개발자금 지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각서에서 “국내 석유 생산과 정제 역량 확보는 미국 방위태세에 핵심”이며 “즉각적인 조치가 없으면 방어 역량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전쟁, 재난 또는 경제적 혼란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여전히 (에너지 측면에서) 취약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 1위 산유국이다. 2019년 이후 7년 넘게 에너지 순 수출국의 지위를 유지(미 에너지정보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에너지 자립’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에너지 전체로 보면 수출량이 많지만 개별 에너지원이나 지역별로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미국은 하루 2000만배럴의 석유를 소비하고 있으나 생산량은 하루 1300만배럴 수준이다. 특히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중질유는 베네수엘라나 캐나다에서 수입된다. 천연가스 생산량도 전체적으로는 많지만, 모든 지역에서 고르게 생산되진 않기 때문에 북동부 지역에서는 캐나다산 가스를 수입해서 쓴다. 트럼프 정부는 야생동물 보호나 환경보호를 위해 막아뒀던 구역을 화석연료 개발에 대폭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내 셰일오일·가스 생산업체들이 이란전을 계기로 미국 내 ‘보물(신규 개발지) 찾기’가 벌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에너지 자립을 위해 추진하는 또 다른 축은 원전이다. 지난해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한 미국은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16일 의회에서 “5~10기의 원전이 에너지부 대출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함께 짓는 프로젝트도 다수 추진되고 있다.
○ 원전으로 방향 튼 유럽
친환경 기조를 유지해 온 유럽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란 전쟁까지 이어지면서 원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57%(2024년 기준)에 달한다. 석유(67%)와 천연가스(24%) 수입 비중이 높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에 의존하다 우크라이나전으로 치명타를 입은 유럽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석유 공급까지 줄어들면서 에너지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FT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재택근무를 늘리고 대중교통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하는 ‘행동 변화 권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유럽이 원전 비중을 축소한 것이 “전략적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EU 집행위는 원자력 발전 용량을 지난해 98GW(기가와트)에서 2050년까지 109~150GW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약 2410억유로(약 416조원)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집행위는 예상하고 있다.

이미 전력의 약 65%를 원자력으로 생산하고 있는 프랑스는 원전 추가 증설을 논의 중이다. 올초 프랑스 정부는 원전 6기 신설 계획을 확정하고, 추가로 최대 8기 건설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신속대응’ 재생에너지 강점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필요성도 다시 부각되는 중이다. 생산지역에서 바로 소비할 수 있는 ‘지산지소’ 특성이 있는 데다, 원전보다 빠른 속도로 에너지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 위기에 대한 대응 중 하나는 재생에너지 가속화가 될 것”이라면서 “탄소 감축 때문만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는 국내 자급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국내 기업에도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세계 각국이 원전 투자를 늘릴 경우 시공 분야 경쟁력이 뛰어나고, 경험이 풍부한 국내 기업들을 찾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비용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보글 원전 사례 등이 있어 한국의 경쟁력이 더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태양광과 풍력, 배터리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중국산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과 유럽의 정책 방향은 한국 기업에 유리할 수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한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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