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시장도 반응하고 있다. HD현대그룹의 시가총액은 27일 처음 200조원을 돌파했다. 증권가에선 HD현대중공업이 지난주 미국 AI 데이터센터에 6271억원 규모 선박 엔진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은 것이 기폭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수주 사실을 공시한 지난 22일 HD현대중공업 주가는 57만6000원에서 64만1000원으로 11.3% 뛰었다. 선박 엔진이 AI 전력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기대에 한화엔진과 STX엔진 주가도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AI 관련 문의 폭주로 2년6개월 치 발전용 엔진 수주 잔량을 확보했다”며 “연간 500만 마력 규모 국내 생산설비를 ‘완전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 화학 등 다른 전통 제조기업도 AI 바람을 타고 있다. 전력 다소비 업종의 강점을 살려 남아도는 전력 인프라에 데이터센터를 유치한다는 구상이다. 동국제강과 OCI홀딩스, SGC에너지 등이 데이터센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데이터전력 수요 16% 늘 때 글로벌 발전량 2.8% 증가 그쳐
전통 제조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에 뛰어든 배경에는 AI 인프라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은 ‘BYOE(Bring your own energy·자체 전력망 확보)’ 기조가 있다. 산업 발전 속도에 비해 에너지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지자 기업 자체적인 전력 인프라 구축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지난해 485테라와트시(TWh)로 1년 전(416TWh)보다 16.6% 급증했다. 반면 세계 발전량은 3만1260TWh에서 3만2132TWh로 약 2.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업계에서는 전력 인프라 부족 탓에 올해 예정된 미국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약 40%가 지연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전력망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불황에 빠진 철강업계도 이를 기회로 삼고 나섰다. 동국제강은 인천과 충남 당진 등 제철소 유휴 부지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이를 통해 임대 사업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철소 인근에 구축된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로 전기를 끌어온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철근 수요 둔화에 따라 인천 제강공장 가동률을 5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올해 1월 인천 철근 제강공장과 소형 압연공장을 폐쇄한 현대제철도 유휴 부지를 데이터센터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전력 인프라를 갖춘 땅’이 핵심 자산으로 떠오르면서 과거 비효율 자산으로 여겨지던 노후 공장 부지가 재조명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선업계 행보도 눈에 띈다. HD현대중공업이 지난 22일 선박용으로 개발한 엔진을 데이터센터용 발전 설비로 전환해 미국 AEG에 공급한 게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한화엔진 역시 생산 설비 확충을 통해 데이터센터용 중속 엔진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부유식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냉각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에너지와 인프라,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산업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단순한 신사업 진출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안시욱/신정은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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