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자산 투자자 사이에서 ‘테더 세탁소’ 밀집 지역으로 알려진 서울 역삼동 H오피스텔 건물. 10일 이곳 4층에 있는 한 사무실을 찾아가니 “어차피 우리는 테더로 받지 않느냐” “테더가 부족하다”는 등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직원에게 “테더를 매입하느냐”고 묻자 경계하는 표정으로 “이런 식으로는 거래하지 않는다”고 했다. 2층에 있는 한 헤드헌팅 업체는 “이곳은 과거 상품권 업체로 위장한 테더 세탁소였다”며 “요즘도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수시로 ‘테더를 환전해달라’며 온다”고 했다.
이날 경찰 등에 따르면 테더 환전소는 서울 도심 곳곳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주로 명동, 마곡, 구로·가산디지털단지, 강남 일대 지식산업센터에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역은 사무실이 밀집해 다른 업종으로 위장하기 쉽고, 유동 인구가 많으며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1년간 마곡의 테더 환전소에서 근무했다는 김모씨는 “업주가 조폭들에게 대포통장으로 돈을 받고 테더를 내줬다”고 말했다.이들 환전소가 세탁하는 금액은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한다. 수원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1월 보이스피싱 수익금 2496억원을 세탁한 혐의로 역삼동 가상자산 환전소 업주를 기소했다. 이 환전소에선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하루에 수차례, 1주일에 수십억원씩 환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테더 장외 거래는 SNS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에는 ‘서울 강남, 3억원 이상 손대손(대면 코인 거래를 뜻하는 은어) 거래만’ ‘USDT 즉시 매입’ 등의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주로 직접 만나 현금과 테더를 교환하는 방식인데 거래소를 거치지 않다 보니 고객확인의무나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다.
이날 한 테더 환전업자에게 텔레그램으로 “손대손 가능한가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3초 만에 답장이 왔다. 이 업자는 “선릉에 있고 수수료는 1%”라며 “거래는 1000만원 단위로만 한다”고 했다. 1억원 이상 현금 거래를 원한다고 하자 그는 “구매하려면 선릉역 인근 ◇◇오피스텔로 오라”며 접선 장소를 찍어 보냈다. 약속한 시간에 만난 업자는 기자임을 밝히자 황급히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경찰이 가상자산 전담 추적·수사팀까지 꾸려 대응에 나섰지만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 테더 거래가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와 개인 지갑을 거치며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 데다 현금 전달책, 환전상, 재정거래 참여자 등이 역할별로 분리돼 있어 범죄 입증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정부가 2022년 3월부터 100만원 이상 가상자산 거래 시 송·수신인 정보를 확인하는 이른바 ‘트래블룰’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트래블룰로는 자금이 해외로 이동하거나 불법적으로 유용되면 소유주와 사용처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규제 대상을 거래소에만 한정하지 말고 중개인과 지갑 서비스 제공자, 환전업자 등으로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총/류병화/진영기 기자 young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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