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 시대, 기업들의 생존 전략 [지평의 노동 Insight]

입력 2026-05-11 00:00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오랜 기간 다수 기업의 임금체계로 활용된 포괄임금제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4월 8일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이하 '포괄임금 지침')을 발표하고 다음 날부터 시행했다. 포괄임금 관련 정부의 공식 지침이 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침의 핵심은 단순하다. 실제로 일한 시간만큼 정확히 수당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과연 '실제로 일한 시간'이란 무엇인가?
'근로시간' 법적 공백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주 40시간, 1일 8시간이라는 한도를 정할 뿐, '근로시간'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조 제3항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근로시간의 구체적 판단 기준은 판례를 통해 도출될 수 있는데, 대법원은 "근로시간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근로계약에 따른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을 말하고, 휴게시간이란 근로시간 도중에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해방되어 근로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작업시간 도중에 실제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시간이라 하더라도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6다41990 판결 등).

요컨대 '지휘·감독 하의 구속 여부'가 근로시간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다. 실제로 작업하지 않아도 근로시간이 될 수 있고, 이름은 '휴식'이어도 실질적으로는 근로시간인 경우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대기·당직·이동시간까지'회색지대'
포괄임금 지침이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수당 산정'을 요구하는 순간, 대기시간의 처리는 기업이 직면할 가장 첨예한 법적 쟁점이 될 수 있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에서 정한 휴식시간이나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에 속하는지는 "근로계약의 내용이나 해당 사업장에 적용되는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의 규정, 근로자가 제공하는 업무의 내용과 해당 사업장에서의 구체적인 업무 방식, 휴게 중인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간섭이나 감독 여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휴게 장소의 구비 여부, 그 밖에 근로자의 실질적 휴식을 방해하거나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는지와 그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여, 개별 사업장 및 근로제공 설정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대법원 2017. 12. 5. 선고 2014다74254 판결).

당직·야간 대기의 경우는 한층 복잡하다. 당직근무가 본래 업무의 연장이거나 그 내용과 질이 통상근무의 태양과 유사하다면 근로시간에 포함되지만, 전체적으로 근무 밀도가 낮은 단순 대기라면 실제로 업무에 종사한 시간만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다. 업무 투입 빈도, 수면 보장 여부, 통상근무와의 질적 연속성이 모두 판단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병원 시설관리 야간근무자가 방제실에서 대기하며 민원·돌발 상황에 수시로 대응하여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휴게시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근로시간으로 인정될 수 있다. 반면, 평일 일과 후와 주말에 방범, 방호를 위한 경비 또는 순찰을 수행하는 경비원이 야간에 휴식과 수면이 가능하고 개별 지시·감독이 없다면 대기시간이 아닌 휴게시간으로 인정될 수 있다(대법원 2017. 12. 5. 선고 2014다74254 판결). 같은 '대기' 형태라도 사업장마다 결론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또한, 대규모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근무지(공장, 사무실 등)에서 퇴근시간까지 근무하고 퇴근을 위해 이탈해 회사 정문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퇴근을 위한 이동시간으로서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동시간 중이라도 정문 통과 시 보안 점검, 물품 반납, 업무 보고 등이 의무화되어 있는 경우, 이동 중에도 무전이나 전화를 통해 업무 지시를 받는 경우 등 지휘·감독에 놓여 있다면 근로시간에 해당할 수 있다.
"월급에 다 포함" 이제 불가3개 의무 지켜야
이번 지침은 기존 판례와 현행법을 재확인한 성격이지만, 처음으로 행정 지침의 형식으로 명문화되어 현장 구속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실무적 의의가 크다. 핵심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임금 항목 구분 기재 의무 - 임금대장과 임금명세서에 기본급·연장근로수당·야간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을 항목별로 구분해 기재해야 한다. '월 OOO만 원' 형태의 통합 기재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둘째, 고정 OT 차액 지급 의무 - 고정 OT(정액수당제) 약정을 체결한 경우에도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법정수당이 약정 금액을 초과하면 그 차액을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 차액 미지급 시 임금체불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셋째, 근로시간 전면 기록·관리 의무 - 모든 근로자(근로기준법 제63조 적용 제외 대상은 제외)의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포함한 실제 근로시간을 빠짐없이 기록·관리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포괄임금·고정 OT 오남용 익명신고센터를 운영하여 신고 사업장을 수시 감독 및 기획감독 대상으로 관리하고, 위법 확인 시 과태료 부과 등 엄정 조치를 병행할 예정이다.

위 지침의 세 가지 의무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며, 그 이행의 출발점은 결국 '실제 근로시간'의 정확한 확정이다.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수당 산정을 하려면 먼저 '실제 근로시간'이 무엇인지를 확정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기시간, 당직시간, 이동시간, 교육시간 등의 근로시간 해당 여부는 사업장별로 개별 판단이 불가피하다. 특히 근로시간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면 분쟁 발생 시 근로자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크다.

또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간주근로·재량근로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계산의 특례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직 포괄임금 방식을 유지하는 사업장이라면, 단순히 약정 금액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업무 특성에 맞는 합법적 근로시간제도의 설계 자체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업들, '근로시간 관리' 재설계 필요

포괄임금제 폐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2026년 4월 기준 국회에 9건이 상정되어 있지만 법 통과 시점은 미정이다. 다만 '포괄임금제 원칙적 금지'는 현 정부의 국정 과제로서, 제도 자체가 유지되리라 낙관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기업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사업장 내 모든 근무 유형에 대해 근로시간 해당 여부를 법적으로 재점검하는 것이다. 대기시간, 교육시간, 이동시간 등 경계 영역의 시간들을 명확히 분류하고 취업규칙·근로계약에 반영해야 한다.

둘째, 정확한 근로시간 기록·관리 시스템을 즉시 구축해야 한다. 기록의 부재는 분쟁 시 기업의 패소 위험을 구조적으로 높인다.

셋째, 고정 OT 방식을 유지할 경우 약정 시간 수와 산정 기준을 구체화하고, 실제 초과근로 발생 시 차액 정산 프로세스를 확보해야 한다.

포괄임금제의 황혼은 동시에 근로시간 관리 체계 정비의 새벽이기도 하다. ‘근로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기업만이 다가오는 법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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