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셰인바움 대통령이 BTS 멤버 7명과 함께 국립궁전 발코니에 선 가운데 5만명의 아미(BTS 팬덤)가 한국어 가사를 떼창했다. 5월 7·9·10일 GNP 세구로스 스타디움에서는 13만6000명이 사흘간 콘서트장을 가득 채웠다. 보랏빛 응원봉의 바다, 떼창, 눈물, 환호 ? 이것이 한쪽 멕시코의 사흘이었다.
그러나 같은 사흘 동안 다른 멕시코는 멈추지 않았다. 9일 아침 미국 검찰에 마약 혐의로 기소된 루벤 로차 모야 시날로아주 주지사의 자택이 총격을 받았다. 같은 날 멕시코시티 테피토 구역에서 총격이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시날로아주는 BTS 환영식 직전 한 주간(5월2~8일) 28명이 폭력으로 사망했다. 거리에서 정상 페이스의 카르텔 폭력은 계속됐다.
이 두 멕시코가 같은 시간 같은 나라에서 함께 흘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BTS의 사흘이 가진 진짜 무게가 보인다.
광장이 평화로웠던 것은 한류의 정서적 힘 때문만이 아니었다. 멕시코시티 보안청은 콘서트장에 경찰 1186명, 민간경비대 784명, 순찰차 38대, 모터사이클 10대, 견인차 9대, 드론 2대, 콘도르 헬리콥터 1대, 마약·폭발물 탐지견 6마리를 투입했다. 사실상 국가 정상 방문급의 보안 작전이었다. 셰인바움은 자국 청년이 보랏빛 응원봉을 흔드는 그 광장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무력을 통째로 동원했다.
이 사실이 슬프다. 멕시코에서 청년이 평화로운 한 순간을 누리려면 5000명의 무장 경비가 필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실은 절박하다. 그 사흘의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멕시코는 가진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
광장에 모인 5만명의 청년에게 이 사흘이 의미한 것은 '잠시의 망각'이었다. 카르텔의 "군대보다 보수가 좋다"는 가입 광고를 매일 마주하던 십대가,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향을 떠날 채비를 하던 이십대가, 친척 한 명을 폭력으로 잃은 삼십대가, 그날 광장에서는 한국어 가사를 외치며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쳤다. 사흘 동안 그들은 멕시코 청년이 아니라 세계 청년의 일원이었다. 카르텔도, 시날로아 주지사 기소도, 트럼프의 군사 개입 위협도, 그 광장에는 닿지 못했다.
이 잠시의 망각이 작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트라우마 연구가 일관되게 말해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정신이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잠시라도 멈추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4시간 폭력에 노출된 사람과 그중 하루 몇 시간이라도 다른 세계를 본 사람은 정신적 회복 가능성이 다르다. 그래서 그 사흘은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었다. 멕시코 청년의 정신에 잠시 열린 숨구멍이었다.더 중요한 것은 그 사흘 이후다. 라틴 아메리카의 아미는 단순한 음악 팬덤이 아니다. 2019년 칠레 사회 봉기 때 아미는 시위 정보를 확산하고 인권 침해를 폭로했다. 칠레 정부는 한때 아미를 '시위 선동자' 중 하나로 지목할 정도였다. 2021년 콜롬비아 전국 파업 때는 '#ParoNacional11M(5월11일 전국 파업!)' 해시태그를 아미가 활성화하고, 보수 인플루언서들의 시위 비난 해시태그를 BTS 영상으로 덮어 무력화시켰다. 페루의 2020년 시위 때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멕시코의 아미는 라틴 8위 규모다. 브라질·아르헨티나·페루·콜롬비아 등과 함께 라틴 K-팝 팬덤 상위권이다. 5월6일 광장에 모인 5만 명, 그리고 3일 콘서트에 모인 13만6000명은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는 청년이 아니다. 그들은 "증오 담론을 거부하고, 폭력을 거부하며, 평화와 포용을 노래로 외운 청년들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이 BTS와 환담한 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평화와 포용의 문화를 전한다"고 강조한 것은 사교 인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미가 멕시코 청년의 어떤 가치 공동체로 자라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BTS의 사흘이 끝난 뒤에도 광장의 보랏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13만6000명의 청년이 "우리는 폭력의 멕시코가 아니라 보랏빛 광장의 멕시코를 선택한다"고 몸으로 선언한 사흘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셜미디어(SNS), 모임, 일상에서 보랏빛 응원봉은 계속 흔들린다.
두 멕시코는 여전히 공존한다. 시날로아의 핏빛 거리와 멕시코시티의 보랏빛 광장은 같은 나라 안에 있다. 그러나 그 두 멕시코 중 어느 쪽이 자라느냐는 결정돼 있지 않다. 한쪽에서 카르텔이 청년을 끌어들이는 동안 다른 쪽에서 아미는 평화를 외운 청년들을 모으고 있다. BTS의 사흘은 그 아미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청년이 청년에게 닿은 그 사흘의 행복이 멕시코의 다음 사흘, 한 달, 한 해에 어떤 모양으로 자라날지 ? 그것이 이 보랏빛 사건의 진짜 무게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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