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금융위기가 치솟던 유가에 급제동을 걸었다. 소득과 소비 붕괴로 석유 수요는 급감했다. 유가는 그해 12월 배럴당 33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유가 폭락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나서면서 급반전됐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무너지고 ‘중동의 봄’ 발생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석유 사재기가 시작되자 유가는 다시 올라갔다.
2010년대 미국의 셰일오일 혁명은 또 한 번의 유가 격동의 시기를 맞게 한 것은 물론 치열한 석유 패권 다툼을 불렀다. 미국은 셰일오일에 힘입어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기존 OPEC 산유국들은 석유 패권 유지를 위해 증산으로 맞섰다. 저유가 전략은 생산 원가가 높은 셰일 업체들을 파산으로 몰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셰일오일 산유량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용이 많이 드는 시추와 파쇄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저유가로 인해 신규 시추가 둔화되거나 중단되면 공급량이 줄어든다는 점을 OPEC이 노린 것이다. 압달라 엘 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유가가 현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미국 셰일오일 산유량의 절반이 손실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로버트 맥널리 ‘석유의 종말은 없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셰일 업체들은 생산 기술 혁신으로 대처했다. 또한 임대 비용, 향후 생산 기회를 감안하면 손해 보더라도 셰일오일을 계속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셰일오일은 기존 석유에 비해 짧은 개발 사이클로 인해 시장 변동에 즉각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중동 석유에 의존하고 있던 미국으로선 전략적으로라도 셰일오일을 계속 뽑아내야 했다. 셰일오일 생산량 증가와 OPEC의 산유량 감축 불가 결정이 발표되면서 유가는 폭락했다. 2014년 100달러에 육박하던 두바이유는 2년 뒤 3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아울러 중국 경제 둔화 전망까지 겹쳐 2016년 초 주가는 사상 최악으로 내려갔다.
셰일 대응 OPEC의 ‘저유가 전략’ 자충수로
게다가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2015년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해버렸다. 사우디가 독점적으로 행사해 오던 ‘스윙 프로듀서’(생산량 조절을 통해 전체 수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국가) 역할에 미국이 끼어든 것이다. 저유가로 미국의 셰일 업체를 주저앉히려던 사우디의 전략은 자국과 OPEC 회원국들의 재정을 악화시키는 자충수로 돌아왔다. 셰일오일 등장으로 석유 주도권 약화 우려가 나오자 OPEC은 전략적 대응에 나섰다. 석유 증산 또는 감산을 통해 유가를 통제하려는 OPEC의 전통 전략은 비(非)OPEC 국가들의 비협조로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특히 세계 3위 산유국인 러시아가 OPEC 밖에 있는 것은 유가 통제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곤 했다. 그래서 OPEC은 러시아 등 비회원국 11개국을 동참시켜 2016년 12월 ‘OPEC+’를 출범시켰다.
셰일 혁명으로 인한 에너지 자립은 미국의 중동 전략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는 등 대중동 군사개입 자제를 택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 회귀(pivot to Asia)’도 셰일오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헬렌 톰슨 ‘질서 없음’). 셰일오일 덕분에 중동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와의 관계에서 갑의 위치로 올라서려 했다. 미국은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사건과 관련,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배후로 지목했다. 바이든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사우디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F-35 전투기 판매 결정을 뒤집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반전됐다. 유가와 미국 물가가 치솟자 바이든은 사우디를 방문해 석유 증산을 요청했다. 미국내 중동산 원유 비중은 2010년 28%에서 2020년 13%로 급감했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인 2024년 19.3%로 늘었다. 빈 살만은 카슈끄지 살해 혐의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팔레스타인계 미국 언론인 피격 사건을 거론하는 등 미국 인권을 제기하고 증산 요청을 거부했다.
에너지 소비 급증에 따라 중국도 2010년대 들어 석유 확보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남미와 아프리카, 이란 등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고 있던 중국은 미국이 수송로를 틀어쥐고 있어 언제든 위험할 수 있다고 보고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태양광과 풍력 개발, 전기차 육성에 박차를 가한 것은 그래서다. 그럼에도 석유 소비 급증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탄소배출량은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중국은 아라비아해 연안에 있는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 운항권을 획득했다. 이뿐만 아니라 ‘경제회랑(China-Pakistan Economic Corridor·CPEC)’을 만들어 송유관과 전력망, 철도 등을 건설하기로 파키스탄 정부와 합의했다. 과다르와 중국 신장 카슈가르 지역을 잇는 것이다. 이 회랑을 통해 중동산 원유를 들여온다면 미군 통제 우려가 있다고 보는 믈라카해협을 통하는 것보다 거리가 80% 단축된다. CPEC은 중국의 인도양 전략인 ‘진주 목걸이’의 핵심 고리다. 다만 과다르항이 중국군의 인도양 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우려하는 미국과 인도의 압박, 파키스탄의 부채 부담 등으로 CPEC 2단계 프로젝트는 진전이 더딘 상황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4년 5월 서시베리아 유전과 중국 북동부를 잇는 ‘파워 오브 시베리아’ 수송관을 짓기로 합의했고 5년 뒤 개통했다. 러시아로선 크림 반도 점령 이후 미국의 제재 탈출구가, 중국으로선 급증하는 에너지 소비를 충족하는 수단이 각각 필요했다. 미국의 러시아 에너지 제재가 중국과 러시아를 밀착하게 한 것이다. 양국은 ‘파워 오브 시베리아2’도 추진하고 있다.
셰일 혁명은 미국과 유럽, 유럽 내부 간 분열을 불렀다. 러시아와 인접해 지정학적 위협을 느끼고 있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미국의 셰일가스 수입이 생명줄이었다. 독일은 상황이 달랐다. 2010년대 초 원자력발전을 없앤 독일은 가스 소비가 늘 수밖에 없었다. 이미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된 러시아 가스가 미국산보다 수입 비용이 더 쌌다. 메르켈 정부는 미국의 가스 수출 역량을 환영하기는커녕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 라인 건설을 지원함으로써 러시아산 가스와 발트해 수송 경로에 판돈을 올렸다(‘질서 없음’). 미국은 러시아가 추진한 사우스스트림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참여한 동·남유럽 국가들에 철회를 종용했다. 유럽연합(EU) 지도부가 미국에 동조하고 남유럽 국가들이 반발하면서 유럽 내부 간 갈등도 심화됐다.
2015년 이란 핵협정은 대서양 동맹의 또 다른 갈등 요소가 됐다. 협정에 사인한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은 이를 파기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반발했다. 유럽은 이란산 석유의 주요 고객이었다. EU는 2019년 이란이 배제돼 있는 국제결제망(SWIFT)을 우회해 유럽과 이란이 유로로 결제할 수 있도록 교환 시장 ‘인스텍스(INSTEX)’를 설치했다. 이란산 석유와 가스 수출 길을 터 주려는 목적이었지만 실패했다. 인스텍스 참여 기업들을 미국 시장에서 배제하겠다는 트럼프의 압력으로 달러패권을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하이케 부흐터 ‘석유전쟁’). (⑤회에 계속)
홍영식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전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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