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제약업계의 중국 바이오텍 투자와 협력이 확대되면서 미 의회와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 국가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화이자는 중국 쑤저우에 본사를 둔 이노벤트 바이오로직스와 항암제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에 따라 화이자는 이노벤트에 6억5천만달러를 지급한다. 상업화와 규제 목표가 충족될 경우 전체 계약 규모는 최대 105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 이는 미국 제약사들이 중국 바이오텍 기술과 후보물질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 같은 흐름은 다른 산업에서 나타난 미국과 중국 간 기술 의존 관계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서방 기업들이 중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으며, 미국상공회의소도 이달 초 각국이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 확대에 대응할 시간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제 바이오산업도 이러한 논쟁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원 중국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 소속 존 물레나르 의원은 지난 5월 21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을 포함한 국가에 대한 미국 투자 제한을 다루는 2025년 국가안보법 적용 대상에 바이오테크 산업을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물레나르 의원은 특히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중국 제약사 헝루이와 체결한 계약을 문제 삼았다. 해당 계약은 헝루이에 최대 9억5천만달러를 지급하고 공동 신약 개발 선택권까지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미국의 자본과 기술이 중국 바이오산업으로 과도하게 유입되고 있다며 제약 지식재산권 라이선스 거래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촉구했다.
중국 바이오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견제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중국 정부의 지원이 자국 바이오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 중이다. 지난 5월 27일 열린 청문회에서는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 관계자가 해당 조사를 불필요하다고 비판했다.
투자업계 역시 워싱턴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벨뷰에셋매니지먼트의 리서치 책임자 카일 라스바흐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중국 관련 거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중국에서 시작된 신약 후보물질이 포함돼 있다며, 우수한 기술이라면 중국에서 나왔더라도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을 찾는 배경에는 특허 만료 압박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대형 제약사들은 주력 의약품의 특허가 잇따라 종료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 역량과 신약 파이프라인이 빠르게 성장한 중국 기업들이 주요 파트너로 부상했다.
실제로 올해 중국 제약사들은 해외 자산 매각 및 기술 수출 계약에서 사상 최대 수준의 거래를 기록했다. 데이터 업체 이벨류에이트(에 따르면 애브비, 아스트라제네카, 일라이릴리, 노바티스, 사노피는 올해 들어 중국 기업들에 총 25억달러의 선급금을 지급했다. 지분 투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개발 목표 달성 시 중국 기업들이 받을 수 있는 추가 수익은 수십억달러 규모에 달한다.
화이자 역시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화이자는 중국 제약사 3SBio와 항암제 계약을 체결하며 12억5천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당시 계약에는 화이자의 1억달러 규모 지분 투자도 포함됐다.
반면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 의존 심화에 대한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청(FDA) 전 국장은 올해 초 의약품 산업의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초기 단계 신약 실험이 미국보다 중국에서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스턴의 바이오 투자회사 큐리바이오는 올해 로비 활동을 시작하며 의원들을 대상으로 ‘중국은 신약 공급망에서 희토류 전략을 반복하고 있다’는 제목의 자료를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토류 시장에서 구축한 지배력을 의약품 공급망에서도 재현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미국 바이오 투자업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140억달러 규모 바이오 벤처캐피털 RA캐피털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콜친스키는 바이오산업을 국가안보 투자 제한 대상에 포함할 경우 미국 시장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희토류나 반도체 분야에 적용된 정책 접근법을 바이오산업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FT는 중국 바이오텍이 글로벌 제약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이 국가안보와 산업 경쟁력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가 향후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의회와 규제 당국의 판단에 따라 글로벌 바이오 투자 흐름과 신약 개발 전략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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