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 대규모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조이는 장면은 '시장의 정점' 구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기업은 과열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가치를 비싸게 인정받아 자금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하고, 중앙은행은 과열 해소를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코로나19 이후 조정장이, 그 전에는 닷컴버블과 대공황 때가 그랬다.
지난 5일 나스닥 급락도 두가지 신호와 함께 나타났다. 스페이스X 등 대규모 IPO와 메타의 유상증자 등이 '유동성 블랙홀'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필요성이 커지면서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가능성이 재점화했다. 여기에 시장을 이끌던 반도체산업에 대한 의구심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증시가 본격적인 조정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지난 5일 발표된 미국의 5월 비농업 고용이 17만2000개 증가한 것으로 집계돼 시장 예상치(8만5000개)를 두 배 가까이 웃돌면서 금리 인상 전망이 강화됐다. Fed의 정책 목표는 물가와 고용 안정인데, 물가가 높아지면 금리를 높이고, 고용이 악화하면 금리를 낮춰야 한다. 고용이 좋았다는 것은 금리 인하 가능성은 사라지고, 물가에 따라 금리 인상을 고려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Fed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난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주요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다. 다우존스30은 1.35%, S&P500은 2.65%를 떨어진 가운데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가 4.18% 급락했다.
실제 미 증시에서 급락한 종목은 대부분 반도체와 AI 관련주였다. 지난 5일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13.25% 급락했고, 샌디스크(-11.39%), 웨스턴디지털(-11.06%), 인텔(-11.28%), AMD(-10.86%), 램 리서치(-9.85%) 등도 낙폭이 컸다.
이달부터 시작되는 대규모 IPO도 증시에 악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증시에 넣었던 자금을 현금화해 IPO에 대비하려는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이스X는 오는 12일 IPO를 통해 약 750억달러를 조달할 예정이다. 기업가치는 1조7700억달러에 달한다. 약 1조달러 안팎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오픈AI와 엔트로픽도 스페이스X에 이어 IPO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빅테크 기업의 잇단 유상증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구글이 850억달러 규모의 유상증자에 성공한 후 메타가 수백억달러 규모의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관련 기업 주가가 급락했다.
이재만 하나증권 글로벌투자분석실장은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가 연 5%까지 상승했던 지난 2023년 8~10월 S&P500은 9%, 코스피는 13% 하락했다"며 "명목 성장률보다 조달 비용(금리)이 높으면 조정 시그널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급락을 매수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존 플러드 골드만삭스 미국 주식거래 부문 총괄은 "역사적으로 S&P500이 2% 이상 조정받을 때 매수한 투자자가 좋은 성과를 거뒀다"며 "이번 하락을 매수 기회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플러드 총괄은 "실적 전망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당분간 글로벌 증시는 미국의 주요 이벤트와 Fed의 금리 인상에 대한 Fed의 입장에 따라 큰 변동성 장세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10일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12일 스페이스X IPO, 17~18일 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 등이 주요 변수로 꼽힌다. 이재만 실장은 "CPI가 예상치를 하회하고, FOMC에서 '금리 인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컨센서스가 나타나야 시장이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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