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스로픽이 첨단 인공지능(AI) 모델 페이블5·미토스5를 출시한지 사흘 만에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들 모델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지정한 데 따른 조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두 모델에 대한 외국인의 접근을 차단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앤스로픽에 보냈다. 이에 앤스로픽은 자국민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전체 이용자의 접속을 제한했다.
수출 통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페이블5의 '탈옥(AI 모델의 안전장치를 인위적으로 푸는 행위)' 가능성을 인지하며 시작됐다. 앤디 재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1일 트럼프 행정부에 탈옥 우려를 제기했고, 백악관은 다음날 아침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12일 정오께 트럼프 행정부는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와의 전화에서 두 모델의 서비스를 자발적으로 중단하라고 요구했고, 아모데이 CEO는 "탈옥으로 발견된 취약점은 단순하며 다른 모델에서도 재현될 수 있는 수준"이라며 맞섰다. 결국 상무장관 명의의 서한이 전달되자 앤스로픽은 서비스 중단을 결정했다.
앤스로픽은 이후 홈페이지를 통해 "극히 일부의 탈옥 가능성을 근거로 이미 수억 명에게 배포된 상용 모델을 회수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이런 기준이 업계 전반에 적용된다면 사실상 모든 모델의 배포가 중단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다른 AI모델에 수출 통제를 확대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AI 모델에 대해 시행한 사실상의 첫 수출 통제다. 이로써 미국 외 국가들은 첨단 AI 모델에 대한 접근권을 미 정부의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특히 미국이 자국 내 외국인에게까지 AI 모델 이용을 금지한 점이 주목된다. 이는 방산·핵·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자국 내 연구원에게 기술을 보여주는 행위만으로도 '수출'로 간주하는 '간주 수출(deemed export)'과 유사한 형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앤스로픽이 전면 서비스 중단을 택한 것도 연구 인력 상당수가 외국인인데다, 이용자 가운데 자국민과 외국인을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의 발단은 아마존 등 미국 기업의 사이버보안 우려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마존은 사이버 전문가들과 페이블5 관련 보고서를 공유했고, 최소 4개 소프트웨어에서 보안 취약점을 찾아냈다. 아마존은 이 같은 우려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등과 공유했으며, 약 5개 기업이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마존이 앤스로픽의 주요 투자자라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투자사에 대한 규제를 끌어낸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2023년부터 현재까지 앤스로픽에 총 130억달러(약 19조7500억원)을 투자했다.
이와 관련해 아마존이 클라우드 사업자로서 앤스로픽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아마존은 자사 앤스로픽 클로드, 오픈AI GPT, 메타 라마 등 여러 파운데이션 모델을 배포할 수 있는 플랫폼 베드락을 운영하고 있다. 이 경우 복수의 모델 공급자가 경쟁하는 구도여야 클라우드 사업자가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벤처투자자이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소셜캐피털 CEO는 "기존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들이 프런티어 랩을 무너뜨릴 수 있는 중대한 기회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아마존 측은 “대규모 민간·공공 고객을 서비스하는 주요 클라우드 제공업체로서 정부가 잠재적 보안 위험에 관해 의견을 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간 AI 규제 강화를 요구해온 앤스로픽 스스로 발목을 잡혔다는 지적도 나온다. 앤스로픽은 지난 10일 "특정 AI 모델이 사이버보안 위협을 유발할 수 있다면, 정부가 현행법이나 의회에 제출된 법안의 범위를 넘어서라도 모델 배포를 차단하거나 억제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얀 르쿤 뉴욕대 교수는 "아모데이 CEO가 AI에 대해 퍼뜨려온 터무니없는 공포 조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고 비판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