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외국인 지인이 "한국 사람들은 방탄소년단(BTS) 공연에 왜 그렇게 덤덤하냐"고 물었다. 그는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BTS 팬들이 공연 몇 달 전부터 광란에 가까운 열기를 보이는 걸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에선 달랐다. 뉴스에서야 나오지만 일상의 온도는 훨씬 낮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물이 수증기가 되려면 100도가 필요하죠. 그런데 한국인은 이미 90도짜리 뜨거운 물 속에 살고 있어서 10도 차이를 잘 못 느낍니다."
문화적 충격은 낯섦에서 온다. 브라질 십대 소녀가 BTS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충격- 한 번도 본 적 없는 언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대 미학,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정서- 은 한국인이 구조적으로 가질 수 없는 감각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 안에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김치찌개를 먹으며 눈을 동그랗게 뜰 때, 한국인은 "그게 뭐가 그렇게 맛있어?"라고 반응한다. 한류도 정확히 같은 구조다. 희소성이 없는 곳에 열광은 없다.
이것은 냉소가 아니다. 비교 기준이 다른 것이다. 한국 대중은 수십 년간 수많은 아이돌과 영화와 드라마를 소비하며 극도로 세련된 안목을 쌓아왔다. 기획사 전략을 꿰뚫어보고, 연습생 시스템의 구조를 알고, 히트 공식을 간파한다. 이 시장에서 살아남은 콘텐츠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를 통과한 것이다. 한류의 경쟁력은 바로 이 국내 시장의 혹독함에서 나온다.
삼성 스마트폰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비싸게 팔리듯, 한류 콘텐츠도 해외 소비자를 위한 수출품이 되어가고 있다. 내수와 수출이 분리된 문화 산업- 이것이 한류의 현재 구조다. 그러니 한국인에게 조용필이 BTS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조용필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수출을 계산하지 않았고 해외 팬덤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 진정성이 반세기를 건너 지금도 한국인의 가슴을 울린다. BTS가 세계를 향해 노래할 때, 조용필은 여전히 우리 안을 향해 노래한다. 둘 다 위대하지만 한국인의 정서 깊숙이 뿌리내린 것은 후자라 할 수 있다.
이 역수입 구조는 단순한 사대주의가 아니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스스로의 문화를 평가절하하는 방향으로 훈련받아왔다. 서구의 인정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역사적 경험이 누적된 결과다. 그러나 한류의 시대는 이 구조를 역전시키고 있다. 이제는 한국의 기준이 세계의 기준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과제도 있다. 한류가 수출 상품에만 머물지 않고 한국인 스스로가 자신의 문화를 더 깊이 사랑하고 향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반세기가 지나도 살아있는 것은 수출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한국인의 가장 깊은 정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한류가 자신의 정서적 뿌리를 잃지 않을 때 그것은 진정한 세계 문화로 남을 수 있다.
한국인이 한류에 무감각한 것은, 우리가 이미 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더 자주, 더 자랑스럽게 자신의 문화를 바라볼 때- 한류는 비로소 완성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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