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역설'- 왜 한국인은 한류에 가장 무감각한가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입력 2026-08-25 12:00  

'한류의 역설'- 왜 한국인은 한류에 가장 무감각한가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얼마 전 외국인 지인이 "한국 사람들은 방탄소년단(BTS) 공연에 왜 그렇게 덤덤하냐"고 물었다. 그는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BTS 팬들이 공연 몇 달 전부터 광란에 가까운 열기를 보이는 걸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에선 달랐다. 뉴스에서야 나오지만 일상의 온도는 훨씬 낮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물이 수증기가 되려면 100도가 필요하죠. 그런데 한국인은 이미 90도짜리 뜨거운 물 속에 살고 있어서 10도 차이를 잘 못 느낍니다."
일상이 된 것에 열광하기는 어렵다
한국인에게 BTS는 '그냥' 가요계의 스타다. '기생충'은 그냥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었다. '오징어 게임'도 넷플릭스에서 본 한국 드라마였다. 이것들이 세계를 뒤흔드는 문화 현상이라는 사실을 한국인이 실감한 것은, 외신이 먼저 떠들고 나서였다. 이것은 익숙함의 역설이다.

문화적 충격은 낯섦에서 온다. 브라질 십대 소녀가 BTS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충격- 한 번도 본 적 없는 언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대 미학,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정서- 은 한국인이 구조적으로 가질 수 없는 감각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 안에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김치찌개를 먹으며 눈을 동그랗게 뜰 때, 한국인은 "그게 뭐가 그렇게 맛있어?"라고 반응한다. 한류도 정확히 같은 구조다. 희소성이 없는 곳에 열광은 없다.
한국 대중은 세계에서 가장 냉정한 소비자다
한류 콘텐츠가 해외에서 열광을 받을 때, 국내에서는 오히려 냉정한 평가가 따라오기도 한다.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석권했을 때, 한국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봉준호의 최고작은 아니다"라거나 "'살인의 추억'이나 '마더'가 더 낫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BTS가 빌보드를 장악했을 때도 국내에선 "군 복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더 큰 화제였다.

이것은 냉소가 아니다. 비교 기준이 다른 것이다. 한국 대중은 수십 년간 수많은 아이돌과 영화와 드라마를 소비하며 극도로 세련된 안목을 쌓아왔다. 기획사 전략을 꿰뚫어보고, 연습생 시스템의 구조를 알고, 히트 공식을 간파한다. 이 시장에서 살아남은 콘텐츠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를 통과한 것이다. 한류의 경쟁력은 바로 이 국내 시장의 혹독함에서 나온다.
한류는 점점 더 해외를 향해 설계되고 있다
흥미로운 변화가 있다. 4세대 K팝 이후 노래 가사에서 영어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다. 뮤직비디오의 영상 문법은 할리우드와 유럽의 감성을 의식한다. 세계관 설정은 글로벌 팬덤이 해석하고 즐길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다. 한국어로 노래하지만, 정작 한국인의 정서보다 해외 팬의 취향에 더 최적화된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전략적으로 옳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내수와 수출의 분리가 심화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한류에 덜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류가 점점 더 한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되어가기 때문이다.

삼성 스마트폰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비싸게 팔리듯, 한류 콘텐츠도 해외 소비자를 위한 수출품이 되어가고 있다. 내수와 수출이 분리된 문화 산업- 이것이 한류의 현재 구조다. 그러니 한국인에게 조용필이 BTS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조용필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수출을 계산하지 않았고 해외 팬덤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 진정성이 반세기를 건너 지금도 한국인의 가슴을 울린다. BTS가 세계를 향해 노래할 때, 조용필은 여전히 우리 안을 향해 노래한다. 둘 다 위대하지만 한국인의 정서 깊숙이 뿌리내린 것은 후자라 할 수 있다.
역수입의 반복- 외부 평가가 내부 가치를 만든다
한국인이 한류를 재발견하는 경로는 언제나 같다. 밖에서 먼저 뜨고, 그 소식이 역수입돼 국내에서 재평가받는 것이다. BTS가 빌보드에 오른 뒤 한국 방송이 더 열심히 조명했고,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세계 1위가 된 뒤 한국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받던 날 밤, 한국인들은 TV 앞에 모여 '우리 영화'의 수상을 응원했다.

이 역수입 구조는 단순한 사대주의가 아니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스스로의 문화를 평가절하하는 방향으로 훈련받아왔다. 서구의 인정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역사적 경험이 누적된 결과다. 그러나 한류의 시대는 이 구조를 역전시키고 있다. 이제는 한국의 기준이 세계의 기준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래서 한류는 지속 가능한가
한국인의 무감각은 한류의 약점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한류의 내구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외부의 열광에 흔들리지 않고 내부에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도태시키는 시스템- 이것이 한류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현상이 된 이유다.

물론 과제도 있다. 한류가 수출 상품에만 머물지 않고 한국인 스스로가 자신의 문화를 더 깊이 사랑하고 향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반세기가 지나도 살아있는 것은 수출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한국인의 가장 깊은 정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한류가 자신의 정서적 뿌리를 잃지 않을 때 그것은 진정한 세계 문화로 남을 수 있다.

한국인이 한류에 무감각한 것은, 우리가 이미 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더 자주, 더 자랑스럽게 자신의 문화를 바라볼 때- 한류는 비로소 완성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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