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은행에서 대출을 내주고 원금은 물론 이자도 받지 못하는 무수익여신 잔액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수준으로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업황은 초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인공지능(AI) 전환의 수혜에서 비켜난 전통 제조업과 건설업 등은 더 큰 하방 압력을 받는 ‘K자형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산은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수익여신은 은행이 이자조차 받지 못하는 대출이다. 은행은 3개월 이상 원금 상환이 연체된 대출에 이자 미납 대출 등을 반영해 무수익여신 잔액을 산정한다. 통상 고정이하여신보다 손실 위험이 큰 대출로 분류된다.
산업 전반의 K자형 양극화가 산은에도 직격탄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기업들은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삼중고 속에 자금난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제조업 생산은 전 분기보다 3% 증가해 5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 증가율은 0.2%에 그쳤다. 내수와 밀접한 숙박·음식점업, 예술·스포츠·여가 서비스업 등은 역성장을 기록했다.
산은의 부실대출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 석유화학·철강 등 제조업의 고정이하여신은 8712억원으로 1년 전보다 14.2% 증가했다. 건설업 부실대출은 1161억원에서 1498억원으로 29% 늘었다. 도소매업은 234억원에서 2014억원으로 10배 가까이 폭증했고, 서비스업·기타 부실여신도 2822억원에서 3536억원으로 25.3% 증가했다.
산은 관계자는 “산은은 여신을 취급하는 기업의 규모 자체가 크다 보니 한두 업체만 흔들려도 손실 규모가 커질 수 있다”며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제조업과 건설업 등 전통산업 전반이 침체를 겪고 있어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취약 업종을 중심으로 무수익여신과 고정이하여신이 증가하고 있으나, 산은의 리스크 관리 체계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손상각비도 크게 증가했다. 올해 1분기 산은의 대손상각비는 1309억원으로, 전년 동기(305억원) 대비 약 4배로 증가했다. 대손상각비는 대출을 내줬다가 회수하지 못해 손실로 처리한 비용을 뜻한다. 대손상각비 증가 등의 영향으로 산은의 순이익은 1조177억원에서 9921억원으로 1년 새 256억원 감소했다.
산은의 건전성 악화가 이어지면 정책금융 공급 여력이 줄고, 정부의 추가 자본 확충 부담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 성장동력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과 선제적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금융이라고 해도 무수익여신이 급증하면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재정 투입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며 “리스크가 큰 중후장대 산업에 대한 여신 규모를 점진적으로 조정하고, AI 등 미래 산업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등 적극적인 건전성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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