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시장이 풀 수 없는 최악의 상황 속에 정부는 구조조정의 ‘중재자’로 나섰다.

대기업 계열사인 롯데케미칼 역시 기초화학 부문 적자로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는 수모를 겪었다. 롯데케미칼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알짜 자회사인 파키스탄 LCPL(고순도 테레프탈산 생산) 지분 전량을 1276억원에 매각했다. 울산 지역 석유화학사인 대한유화 또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대한유화는 과거 야심 차게 추진하던 SM(스티렌모노머) 생산설비 신규 투자를 수익성 악화 전망으로 전면 중단했으며 건설 중이던 자산은 물론 기존 온산공장 사업장에 대해서도 총 320억원이 넘는 대규모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장부에 반영하여 기존의 투자 비용을 손실로 털어내야만 했다.
3개 회사(롯데케미칼, 여천NCC, 대화유화)의 나프타 관련 사업부문 실적을 추적해 보면 2022년 이후 연속적자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이런 상황 속에 정부까지 나선 이유는 재무제표에 찍힌 수천억원의 적자와 손상차손이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이 회사들의 공통점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알짜 사업부를 매각했으며 고부가가치 제품(반도체, 배터리, 모빌리티 등) 쪽으로 생산 라인을 변경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위의 기업들은 왜 대응을 하지 못했을까. 상황이 이토록 절망적임에도 적자를 내는 설비의 스위치를 당장 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재무제표 이면에 숨겨진 막대한 ‘매몰비용(Sunk Cost)’에 있다.
여천NCC의 유형자산 총계는 1.5조원이다. 여천NCC 설비를 가동 감축 없이 그대로 유지할 경우 연간 인건비 약 1200억원과 유형자산상각비 2000여 억원을 고려했을 때 수천억원의 현금 유출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장 문을 닫는 순간 장부에 기록된 유형자산(기계장치, 구축물 등)의 가치는 한순간에 휴지조각(손상차손)이 되어 막대한 당기순손실로 직행한다.
결국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고부가가치 전환을 통해 간신히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사실 석유화학사 입장에서는 승자 없는 결과다. 경영자는 알짜 자산을 헐값에 넘겨야 하는 굴욕을 감수해야 하며 주주들은 자본잠식과 주식 거래 정지, 유상증자로 인한 지분 희석 등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임직원들 역시 구조조정 칼바람 속에서 생계를 위협받는다. 실제로 여천NCC 2공장 폐쇄 소식에 노조가 강력히 반발하며 “가동 중단 시기를 미뤄달라”고 정부에 호소하는 것도 재무적 결정을 넘어 생계를 뒤흔드는 파급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DART 2025년 효성화학 사업보고서피치 못할 선택은 결국 숫자에 의지한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장치산업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보아야 한다. 또한 살아남더라도 설비를 줄이고, 자산을 팔고, 사람을 줄여야 하는 현실. 장치산업의 비애란 거대한 설비 때문에 적자가 나도 쉽게 멈출 수도 없다는 데 있다. 효성화학의 연결손익계산서를 펼쳐보면 이 딜레마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 매출원가가 매출액을 넘어선 채 3년이 흘렀다. 2023년 1140억원, 2024년 825억원, 2025년 705억원. 누적 매출총손실만 2670억원이다. 판매비·관리비와 연구개발비를 차감하기도 전에 제품을 만들어 팔수록 손해가 쌓이는 구조다. 돌려도 적자, 멈춰도 손실. 재무제표는 잔혹한 딜레마를 증언한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어려움을 겪는 석유화학사가 얼마나 처절한 선택을 하는지 재무제표가 가장 솔직하다.
재무제표로 기업의 생존 시간을 확인할 수 있을까?
우선 개념적으로 ‘운전자본’을 이해해야 한다. 기업이 영업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돈’이다. 매달 이만큼의 운전자본이 드는데 적자에 매출이 하락한다면 가진 ‘돈’으로 얼마나 공장을 돌릴지 대충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회계적 운전자본(Working Capital)=유동자산–유동부채, 즉 1년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에서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할 부채를 차감한 값으로 기업의 단기적인 지불 능력을 보여주는 정태적인 지표다.
당장 돈이 없어 얼마 만에 망할지 판단하는 데 부족하다. 그래서 생존에 필요한 현금 중심으로 숫자를 함께 뽑아 봐야 한다. 기업의 현금 연소율(Cash Burn Rate)과 필수 고정 지출을 파악해야 한다.
1년 생존 필요 현금=연간 고정 영업비용+1년 내 만기 도래 차입금+연간 금융비용(이자).
여기에 손익계산서의 판관비(SG&A) 중 감가상각비, 무형자산상각비 등 현금이 유출되지 않는 비용(Non-cash expenses)을 제외한 순수 현금성 고정비(인건비, 임대료, 필수 유지보수비 등)을 고려한다.
만약 어떤 기업이 한계에 다다른 거 같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시간을 재고 싶다면 ‘현재 보유 현금+단기금융상품 / 월평균 현금소진량’ 식의 숫자를 구하면 될 것이다.
1. AI 프롬프터에 궁금한 기업의 재무제표 파일을 업로드한다.
2. 프롬프터에 아래와 같이 질문한다.
운전자본(Working Capital)=유동자산–유동부채 그리고 1년 생존 필요 현금=연간 고정 영업비용+1년 내 만기 도래 차입금+연간 금융비용(이자) 계산해줘. 특히 손익계산서 판관비(SG&A) 중 감가상각비, 무형자산상각비 등 현금이 유출되지 않는 비용(Non-cash expenses)을 제외한 순수 현금성 고정비(인건비, 임대료, 필수 유지보수비 등)을 고려해서 이 기업의 생존 기간을 계산해줘(현재 보유현금+단기금융상품 / 월평균 현금소진량).
3. 나온 결과치에 대해 실제 재무제표 숫자 몇 개를 확인해 결과치가 정확한지 체크한다.
※상기 글은 해당 회사의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를 참고해 작성한 내용입니다. DART(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재무제표 읽기’를 통해 기업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승환 재무제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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