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SK가 내놓은 4755조원 규모의 메가프로젝트를 두고 노동조합과 주주단체가 잇따라 절차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노동자와 주주 등 핵심 이해관계자가 논의 과정에서 빠진 채 정부와 기업 중심으로 계획이 먼저 공개됐다는 비판이다.초기업노조는 "정부와 회사, 노동조합이 한자리에 모이는 노사정 협의의 장을 제안하며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이 국가적 과제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대규모 생산기지 조성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속도전보다 준비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기업노조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선 천금매골의 자세가 필요하다"며 "핵심 인재와 기술을 확보하는 데 망설임 없는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메가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과제"라며 "라인 하나를 가동하기 위해 부지 선정, 인허가, 전력, 용수 등 기반 인프라 확보를 포함하면 최소 5년 이상 걸리는 긴 여정"이라고 주장했다.
노조가 특히 강조한 대목은 현장 여건이다. 초기업노조는 "그만큼 조급함보다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며 긴 호흡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차근차근 대비해 나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 "이 모든 것의 근본에는 사람이 있다"며 "초기업노조는 조합원이 앞으로 일하게 될 현장의 산업 안전, 주거 환경, 인프라가 충실히 갖춰지고 그에 걸맞은 처우가 뒷받침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단체는 "우리는 이 투자 그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회사가 벌어들일 미래의 거의 전부를 향후 15년에 걸쳐 어디에 쏟을 것인가 하는, 회사의 명운을 가르는 이 결정의 자리에, 정작 그 회사의 주인인 주주는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지적했다.
주주운동본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관련 투자 계획을 공시하면서 향후 시장 상황과 경영 환경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취지의 단서를 달았다는 점도 거론했다. 아직 이사회 승인 등을 거쳐 확정될 사안이라면, 투자 계획을 주주에게 먼저 설명하고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단체는 양사 이사회에 '주주보고회' 개최와 주주총회 부의를 요구했다. 또 초과 이익 배분 논의에 주주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삼성과 SK의 발표는 AI 시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국내에 확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삼성은 국내에 총 265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평택캠퍼스와 용인 국가산업단지 등 반도체 클러스터 육성에 2030조원을 투입하고, 호남·충청·영남에는 AI 반도체와 로봇, 배터리, IT 부품·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625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의 지역 투자 가운데 호남 투자 규모는 425조원이다. 이 중 반도체 분야에 400조원이 배정됐다. 삼성전자는 광주에 신규 반도체 팹을 건설하고 디지털 트윈 기반 혁신 허브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SK그룹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산기지 확충을 중심으로 2100조원 규모 중장기 투자 전략을 제시했다. SK텔레콤을 중심으로 전국에 총 15GW(기가와트)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조성하고, SK하이닉스는 용인·청주·서남권을 잇는 AI 메모리 생산벨트에 1100조원을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초기업노조는 "이런 과제는 우리 모두가 뜻을 모을 때 해결할 수 있다"며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조합이 그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주주운동본부는 "우리는 '투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회사에 자본을 대고 위험을 감수한 주주를 그 마땅한 자리로 부르는 일이야말로, 9000 코스피를 진짜로 떠받치는 힘"이라고 했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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