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루티는 구두끈, 디올은 리본…명품은 왜 매듭에 집착할까 [이윤경의 럭셔리코드]

입력 2026-07-10 12:51   수정 2026-07-10 12:54

벨루티는 구두끈, 디올은 리본…명품은 왜 매듭에 집착할까 [이윤경의 럭셔리코드]

우리는 매듭을 묶는 시대에 살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고, 터치하고, 스와이프한다. 느슨하게 연결되고, 쉽게 끊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계 최고의 럭셔리 메종들은 오래전부터 '매듭'을 이야기해 왔다. 벨루티는 구두끈에, 디올은 리본에, 각각 자신들의 철학을 묶어 두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벨루티를 볼 때 가죽을 본다. 그런데 올가 벨루티는 가죽이 아니라 구두끈을 봤다. 사실, 그는 유난히 손끝을 많이 보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최고급 베네치아 가죽과 아름다운 파티나에 감탄했지만 그녀는 고객이 마지막으로 구두를 신는 순간까지 관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벨루티의 VIP인 당대 패셔니스타인 윈저 공작(Duke of Windsor)의 구두끈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의 구두끈은 일반적인 리본처럼 두 개의 고리가 나란히 놓여 있지 않고 한 번 더 감겨 있었다. 그래서 쉽게 풀리지 않았고, 걸을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할머니인 알렉산드라 덴마크 왕비에게서 배운 군 퍼레이드나 공식행사에서 구두끈이 풀리지 않게 한 번 더 감아 절대로 풀리지 않는 더블 루프(double loop)로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본 것은 구두끈을 묶는 방법이 아니라, 구두를 대하는 태도였다. "좋은 구두라면 가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매듭에서 아름답게 완성된다” 벨루티는 단순히 구두를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구두를 신는 마지막 순간까지 디자인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매듭은 벨루티 노트(Berluti Knot)라고 불린다.
풀고 싶어지는 디올의 매듭
반면, 디올에서 리본은 포장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하나의 리추얼, 의식이다. 디올의 하얀 박스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정갈하게 교차한 리본, 완벽한 균형을 이룬 두 개의 날개, 그리고 정중앙에서 단정하게 멈춘 매듭.

많은 사람들은 그 리본을 바로 풀지 못하고 잠시 손을 멈춘다. '풀어도 될까.' 그 짧은 망설임. 디올의 리본은 상자를 묶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를 묶기 위해 존재한다. 선물을 받는 설레임. 누군가 나를 위해 시간을 들였다는 배려. 상자를 열기 직전의 떨림. 디올은 제품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감정까지 함께 포장했다.

크리스찬 디올은 리본을 여성성의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생각했다. 뉴룩(New Look)의 허리, 모자, 꾸뛰르 드레스 그리고 디올의 향수 보틀들의 리본은 패션과 뷰티를 이어주는 상징이 되었다.


리본은 거의 모든 컬렉션에 반복되는 데, 심지어 디올 아카이브에는 "Bow is a signature."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 즉 Bow는 장식이 아니라 디올이라는 언어이다.


벨루티의 매듭은 오래 남기 위해 존재하고, 디올의 리본은 오래 기억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둘이 정말 묶으려 했던 것은 구두끈도, 리본도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이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매듭을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인류는 오래전부터 매듭을 만들었다. 결혼도 매듭이고, 약속도 매듭이며, 인연도 매듭이다. 매듭은 두 끝을 연결하는 기술이 아니다. 하나의 마음이 오래 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위대한 메종은 물건을 완성하지 않는다. 마지막 의식을 완성한다. 구두를 고객에게 건네기 전 마지막 매듭. 선물을 전달하기 전 마지막 리본.. 그 몇 초의 행동이 브랜드의 철학을 대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매듭을 잃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운동화는 슬립온으로 더욱 간단해졌고 택배 상자는 테이프로 봉해진다. 복잡한 프로세스는 클릭하고 스캔하며, 관계는 '팔로우'와 '언팔로우' 사이를 오가고, 연결보다 해제가 더 쉬워졌다. 효율은 높아졌지만, 관계는 가벼워졌다. 그래서일까. AI가 모든 것을 더 빠르게 만드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느린 것에 끌린다.

손으로 묶은 리본. 손끝을 세워 정성껏 감은 구두끈. 사람의 손길이 남아 있는 마지막 흔적. 그 안에서 우리는 아직도 진심을 읽는다. 흥미로운 것은 매듭은 어느 한 문화의 상징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양에서 매듭은 인연이었다.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 한 번 묶으면 쉽게 풀리지 않는 관계의 상징이었다. 서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영어에는 "Tie the knot"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매듭을 묶다'지만, 실제 의미는 ‘결혼하다’이다. 두 사람이 하나의 삶으로 연결되는 순간을 사람들은 '매듭을 묶는다'고 표현했다. 동양의 매듭은 인연을 묶었고, 서양의 매듭은 약속을 묶었다. 그리고 위대한 메종들은 그 매듭으로 사람의 마음을 묶었다.
하지만 매듭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느슨해진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처음 고객을 만나던 설렘. 장인을 향한 존중.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들이던 마음. 창업자가 세상과 처음 맺었던 약속. 시간은 그 모든 매듭을 조금씩 느슨하게 만든다.

브랜드를 위협하는 것은 경쟁사가 아니라 ‘시간’이다. 그래서 위대한 메종은 새로운 매듭을 만드는 데 몰두하지 않는다. 처음 묶었던 매듭을 다시 조여 묶는다. 그것이 헤리티지가 되고, 전통이 되고,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다.

올가 벨루티는 구두끈 하나에 철학을 남겼고 크리스찬 디올은 리본 하나에 설렘을 남겼다. 그들이 남긴 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관계였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매듭을 만든다. 약속. 동료와의 신뢰. 브랜드가 세상과 맺는 관계. 그리고 언젠가 그 매듭은 다시 느슨해질 것이다. 그래서 럭셔리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처음 묶었던 마음을 끝내 놓치지 않는 산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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