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할 때 적용되던 간기능 검사가 36년 만에 폐지됐다. 검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실효성이 낮아진 항목을 없애 혈액 낭비를 줄이고, 만성적인 혈액 부족 문제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보건복지부는 간기능 검사를 혈액 검사 항목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혈액관리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을 이달 1일부터 시행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채혈 전 확인 항목과 채혈된 혈액의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검사 항목에서 수혈용 혈액에 적용되던 간기능 검사를 삭제한 것이다.
간기능 검사는 1990년부터 헌혈 선별 과정에 도입됐다. 당시에는 B형·C형 간염 바이러스를 직접 확인하는 기술이 충분하지 않아 간세포 손상 때 수치가 올라가는 간기능 검사를 우회적인 선별 수단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핵산증폭검사가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바이러스 유전자를 직접 복제해 미세한 양까지 찾아낼 수 있게 되면서 기존 간기능 검사의 필요성이 낮아졌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간기능 검사가 오히려 혈액 낭비를 부른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피로나 음식 섭취 등 일상적인 요인으로도 수치가 일시적으로 변할 수 있어 수혈에 문제가 없는 혈액까지 폐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에서 폐기된 혈액은 약 2억cc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19만 유닛은 간기능 검사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졌다. 유닛은 1회 헌혈용 포장 단위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미 2009년 간기능 검사를 헌혈 선별 항목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도 약 20년 전 해당 검사를 퇴출했다. 한국도 이번 개정으로 국제 기준에 맞춰 검사 체계를 조정하게 됐다.
혈액 수급 상황은 여전히 빠듯하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4월 24일 기준 전국 혈액 보유량은 1만5203유닛이었다. 하루 소요량 5052유닛을 감안하면 약 3.0일분에 그쳤다. 이는 적정 혈액 보유량인 5일분 이상에 크게 못 미친다. 혈액형별로는 B형이 4.3일분, AB형이 3.6일분이었지만 A형과 O형은 각각 2.4일분에 머물렀다.
헌혈 인구 감소도 문제다. 전체 헌혈 실적은 2015년 308만2918건에서 2025년 283만9632건으로 10년 사이 7.9% 줄었다. 특히 20대 이하 비중은 같은 기간 77%에서 52.3%로 낮아졌다.
정부는 간기능 검사 폐지와 함께 헌혈자 기준 완화도 추진한다. 제2차 혈액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현재 69세인 헌혈 가능 연령 상한을 74세 등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한다.
청년층 참여를 늘리기 위한 맞춤형 기념품도 마련한다.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구독권이나 한정판 포토카드 등 젊은 층이 선호하는 방식의 보상을 개발하고 헌혈의집이 없는 기초지자체에는 헌혈 버스를 정기 투입할 계획이다.
병원 내 혈액 사용 관리도 강화한다. 불필요한 수혈을 줄이기 위해 수혈 적정성 평가 항목을 확대하고, 종합병원 의료질평가 지표와 연계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헌혈환급적립금 제도도 개편한다. 최근 사용률이 7%까지 낮아지며 615억원의 적립금이 쌓인 만큼, 이를 헌혈자 예우에 직접 활용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방침이다.
안전성 강화 대책도 포함됐다.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정보관리시스템에 24시간 상시 관제를 도입하고, 우체국 물류망을 활용한 의료취약지 혈액 운송체계 개선도 추진한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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