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창사 이후 60년 가까이 유지한 시급제를 폐지하고 ‘완전 월급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향후 로봇 도입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노동조합의 요구를 회사가 전향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한 것이다.
사측은 로봇 도입에 대한 현장 반발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이 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근·야근 수당 등 추가 수당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임금 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방안인 만큼 산업계 전반으로 파장이 퍼질 것으로 예상된다.
12일 업계와 노조 등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지난 8일 열린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완전 월급제 도입을 위한 연구 용역을 시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노사 공동 태스크포스(TF)가 세부 안을 결정한다. TF는 연구 용역 과정에서 외부 자문위원회를 활용하고, 해외 완성차업체의 임금 운용 체계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노사는 연구 용역과 벤치마킹 결과를 바탕으로 완전 월급제에 맞는 임금 체계를 마련한 뒤 2027년 단체교섭에서 구체적인 도입 시기와 방식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번 합의의 이면에는 로봇 기술 고도화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 미국 공장을 시작으로 제조 현장에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등 로봇을 배치할 계획이다. 국내 공장 도입 여부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노조는 미국 서배너 공장에 4족 보행 로봇 스팟 등이 투입된 만큼 국내 공장에 로봇을 도입하는 건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는 임금이 감소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로봇 투입으로 야간·주말 작업이 줄어들면 연봉 감소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사측은 임금 체계 논의를 통해 로봇 투입에 대한 현장 저항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정급 비중을 늘려 고용 불안을 해소해주는 방식으로 피지컬 인공지능(AI) 기업 전환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도다. 업계에선 AI와 로봇이 주도하는 제조 혁명으로 100년간 제조업을 지배해온 ‘노동시간=임금’ 등식의 해체가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조는 일정소득 보장 받고…사측은 자동화 변신 속도전
현대차 노사가 올해 완전월급제 도입을 논의하기로 한 것도 노사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 배경에는 휴머노이드 개발과 기술 발전이 있다. 회사는 공장에 로봇을 투입하기 위해 노조에 ‘당근’을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노조는 로봇 도입으로 수당이 줄어드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완전월급제는 근로시간이 다소 줄거나 늘더라도 월급액이 매달 일정한 임금체계다.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미리 정해서 월급에 포함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 수준의 월급제가 도입될지는 미지수다. 현대차는 노사가 공동으로 꾸릴 태스크포스(TF)에서 세부안을 결정할 계획이다. 외부 용역을 통해 해외 완성차 업체의 임금체계 등을 면밀히 분석한 뒤 내년부터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노조는 기본급 비중을 대폭 늘리고 잔업·야간·휴일근로가 발생했을 때 수당을 별도로 정산하는 식의 월급제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조가 완전월급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는 공장 자동화 비율이 높아진 데다 사람처럼 일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가 공장에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존 인력을 대체하는 것은 물론 야간·주말 작업을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노조 판단이다. 수당 감소로 월 수십만~수백만원의 월급이 줄어들 수 있는 만큼 매월 받는 고정급 비율을 높여달라는 것이다.
경쟁사도 속속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BMW는 미국 스파르탄버그 공장에 피규어AI의 휴머노이드 ‘피규어 02’를 투입했고, 중국 유니트리로보틱스는 휴머노이드를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완전월급제를 보장해주고 로봇 투입 일정을 앞당기는 게 더 이익이라는 게 내부 판단”이라고 말했다.
생산직 근로자가 줄어드는 현실도 회사 측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이다. 현대차 노조원은 2021년 4만7538명에서 지난해 3만7829명으로 4년 새 20.4% 감소했다. 올해만 2651명이 정년퇴직하는 등 2030년까지 매년 1600~2600명이 현장을 떠난다.
현대차의 변화는 국내 제조업 전반에 ‘도미노 파급 효과’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 노사의 임금 모델은 통상 기아, 현대모비스 등 그룹 계열사는 물론 한국GM, 르노코리아 등 완성차업계 전반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조선 철강 등 대형 제조업 사업장에서도 인공지능(AI) 도입과 연동한 완전월급제 적용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으로선 로봇 도입과 채용 감축 등을 놓고 노조에 당근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의 자동화 전환과 맞물려 완전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는 노조 목소리가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길성/김우섭/정상원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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