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반도체 랠리의 한축으로 꼽히던 일본 키옥시아 주가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월가에선 키옥시아 주가가 현재보다 40%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중국 낸드플래시 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의 빠른 추격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면서다.
14일 도쿄증권거래소(JPX)에 따르면 키옥시아 주가는 이달 들어 20% 넘게 하락했다. 최근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주가 약세를 보인 데다, 앞선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진 영향이다.
전날 닛케이225지수도 3거래일 만에 하락했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등 은행주는 강세를 보였지만, 지수 기여도가 높은 키옥시아와 어드반테스트 등 AI 관련주가 하락하면서 지수를 끌어내렸다.
마쓰이증권의 구보타 도모이치로 수석 시장분석가는 “메모리 반도체 종목 비중이 큰 한국 증시의 하락에 일본 반도체주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가 조정에도 키옥시아를 향한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키옥시아의 신용거래 매수 잔액은 최근 사상 최고 수준으로 불어났다.
닛케이225 구성 종목의 신용 매수 잔고를 주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키옥시아가 약 8700억엔으로 가장 많았다. 소프트뱅크그룹의 4배에 가까운 규모다. 고수익을 노린 개인투자자들이 대규모 레버리지 거래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월가에서 비관적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증권사 샌퍼드 C. 번스타인의 마크 리 애널리스트는 키옥시아 목표주가를 4만엔으로 제시했다. 이는 13일 종가보다 약 40% 낮은 수준이다.
일본 증권사들이 대체로 10만엔 이상의 목표주가를 제시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리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대해서는 현재 주가보다 각각 70%, 80%, 30% 높은 목표주가를 제시하면서도 키옥시아에만 유독 보수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현재의 메모리 가격 상승과 수요 부족이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고 봤다. 2028년까지 이어질 메모리 공급 부족기에 발생하는 이익은 일시적인 초과이익으로 보고, 수급이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9년 이후 실적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산정했다.
키옥시아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는 중국 YMTC가 지목됐다. YMTC는 키옥시아와 마찬가지로 낸드플래시를 주력으로 생산하며 최근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YMTC의 세계 낸드 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 13%로, 1년 전보다 5%포인트 상승했다. 번스타인은 YMTC가 2028년 키옥시아를 제치고 세계 3위 낸드 업체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기술력 격차도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키옥시아는 기판을 접합해 처리 속도를 높이는 ‘CBA’ 기술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오타 히로오 키옥시아 사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 기술을 상용화한 기업은 키옥시아와 YMTC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YMTC가 기업공개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증산에 나설 경우 낸드 시장의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일본의 TV, PC, 액정패널 기업들이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수익성이 악화하고 사업 재편이나 철수에 나섰던 상황이 반도체 산업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YMTC의 증산 영향을 피하기는 어렵지만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 등으로 사업이 다각화돼 있어 낸드 의존도가 높은 키옥시아보다 충격이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키옥시아 주가 하락으로 신용거래 투자자들의 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도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피하기 위한 매도 물량이 다시 주가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키옥시아가 일본 AI 랠리의 대표 종목으로 부상한 만큼 주가 하락세가 장기화할 경우 일본 증시 전반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의 빠른 기술 추격과 가격 공세를 고려하면 ‘주가 4만엔’ 전망을 단순한 비관론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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