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는 18세기 조선 땅에서 어떤 처지였을까. 기록을 살펴보면 ‘교활하다’ ‘아름답다’ ‘사랑스럽다’는 묘사가 많다. 사나운 심성을 가졌지만 외모가 화려하고, 쥐를 잡아주는 일까지 하니 애묘인들도 많았다. 정약용이 “너의 공로에 보답하려고, 의관 차리고 큰 술잔에 술을 부어 제사 지낸다”고 했을 정도다.
신간 <18세기의 동물>은 이처럼 18세기 동물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를 탐구한 책이다.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16명이 뜻을 모았다. 저자들은 도시화 분위기가 꿈틀대던 18세기, 조선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동물과 인간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한다. 지금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동물이 어떻게 인간의 생활로 깊숙이 들어왔는지 알기 위해선 18세기를 살펴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18세기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시선이 크게 변화한 시기였다. 조선에서도 동물이 인간처럼 도덕적 본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예술작품에서도 동물은 과거와 다르게 그려졌다. 영국의 말 초상화가 조지 스터브스의 작품에선 말이 과거처럼 주인을 대변하는 물건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동물의 성격을 인간의 관점으로 해석해 온 역사는 길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여우는 교활함을 상징했다. 하지만 문학이나 예술작품에서 동물을 특별한 상징으로 묘사되는 경우는 18세기부터 세분화되고 더 많아졌다.
예를 들어 십이지신의 첫번째 동물로 다산과 번영을 상징하던 쥐를 곡식을 훔쳐먹거나 병을 옮기는 동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조선 후기의 소설 <서대주전> <서옥기> 등에선 쥐가 교활한 악당으로 묘사된다.
말에 대한 시각도 변화했다. 숙종 때 태조 이성계의 말들은 수려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세종 때 활을 맞아 피 흘리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에 비하면 큰 차이다. 말이 왕권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상징으로 활용됐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18세기는 이국 동물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시기기도 하다. 조선 사람들은 김창업, 홍대용, 박지원 등이 북경에서 코끼리를 직접 보고 기록을 남겼다. 머릿 속 상상이 지식과 관찰의 영역으로 옮겨지면서 인간의 세계관이 크게 확장됐다는 평가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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