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성 심근경색으로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을 받은 환자에겐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해 부담을 줄여주는 ‘베타 차단제’를 처방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국내 의료기관 진료 수준을 평가할 때도 이 약의 처방률을 기준으로 삼는다.
한주용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사진)는 이런 관행을 바꾸고 있는 의사다. 환자가 평생 먹어야 할 약을 끊어도 사망 위험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 처음으로 입증해 올해 3월 미국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세계 의사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실렸다. 한 교수는 “임상 현장 가이드라인을 바꾸기 위한 첫 단추를 꿴 것”이라며 “진료 기준이 바뀌면 환자들의 약물 복용 부담이 줄어드는 데다 연간 수백억에 이르는 의료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스텐트 시술로 환자 심장에 생명을 불어넣는 내과 의사다. 환자들을 위한 검사법과 표준 치료법 등을 개발하고 있다. 치료 후 반드시 복용해야 하는 줄 알았던 베타 차단제 복용을 중단해도 된다는 ‘스마트 디시전(현명한 결정)’ 연구가 대표적이다. 국내 환자 2540명의 데이터 등을 활용해 심근경색을 겪은 지 1년 넘게 지났고 심장 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베타 차단제 복용이 필요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복용한 사람과 복용하지 않은 사람 간 사망·재발 위험, 심부전 발생률 등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다. 그는 “심근경색 환자는 복용해야 하는 약이 상당히 많은 데 이들에게 약을 하나라도 줄여줄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며 “사회·경제적으론 수조원의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지난해엔 스텐트 시술 후 혈소판 활성화 물질을 차단하는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보다 혈소판 표면 수용체를 막는 ‘클로피도그렐’을 복용하는 게 낫다는 연구 결과도 공개했다. 오랜 기간 표준요법으로 활용한 아스피린 대체제의 효과를 규명한 성과다. 세계 내과 연구진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국제학술지 ‘란셋’에 실렸다. 스텐트 시술 환자는 혈관이 다시 막히는 것을 막기 위해 항혈소판제를 복용한다. 초기 6개월에서 1년은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을 함께 복용한다. 이후엔 평생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 교수는 클로피도그렐을 복용한 환자의 심근경색 위험이 24%, 뇌졸중 위험이 21% 낮아졌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는 “환자에게 효과를 높이고 안전성은 유지할 수 있는 치료법을 찾은 연구”라고 했다.
한 교수는 특수 풍선이 달린 기구를 석회화 덩어리 근처에 넣은 뒤 강한 음파 에너지로 덩어리를 깨는 ‘관상동맥 내 쇄석술’을 지난해 4월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2021년 미국에서 승인받은 뒤 유럽 등에서 활용되던 치료법을 한국 환자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 치료법보다 혈관 천공 등의 위험이 낮다. 올해 4월엔 다이아몬드 코팅 기구가 타원형으로 회전하면서 석회화 덩어리를 깨는 ‘궤도형 죽종절제술’도 국내 처음으로 시행했다. 환자마다 다른 혈관 모양과 석회화 덩어리 등에 맞춰 다양한 치료 옵션을 구사하게 됐다. 그는 “관상동맥 환자 치료에 쓸 수 있는 무기가 늘면서 치료 성적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병변이 복잡한 환자는 순환기내과와 흉부외과 의사가 머리를 맞대 치료법을 찾는 다학제 진료도 활발하다. 중증도가 높지 않은 환자는 치료 가능한 적절한 동네 병원으로 연계하는 네트워크 시스템도 갖췄다. 그는 “과거엔 70대 환자도 심장 시술 위험도가 높다고 했지만 최근엔 90대 환자도 시술을 고려할 정도로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며 “신장이나 판막 등 복합 질환을 앓는 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특징 중 하나”라고 했다. 점차 치료 난도는 올라가고 있다는 의미다.
관상동맥은 예고 없이 막히거나 좁아진다. 질환 발생 위험도는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석회화 수치를 측정하면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칼슘 수치가 0이라면 3~5년 내 관상동맥 질환으로 숨지거나 심근경색이 생길 위험이 0.4%에 불과하다. 수치가 100~400이면 위험도는 4.3배 증가한다. 심근경색 증상이 있을 땐 빠르게 병원을 찾는 게 중요하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한 가슴 통증이 20분 넘게 이어지면 바로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한 교수는 “고지혈증이 있는 환자라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스타틴을 꼭 복용해야 한다”며 “스타틴은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오랜 기간 사용된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이라고 했다.
■ 한주용 삼성서울병원 교수약력
△1996년 서울대 의대 졸업
△2007년~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2021~2024년 삼성서울병원심장뇌혈관병원 운영지원실장
△2025년~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과장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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