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데이터센터 필수품인 초고압 변압기와 차단기를 생산하는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 등 전력기기 3사 공장에는 20년 이상 근무한 인력이 대부분이다. 변압기 공정의 핵심인 권선 작업에 투입되려면 최소 2~3년을 배워야 한다. 신입 직원은 선배의 움직임을 눈으로 외우는 기간을 거쳐야 업무를 맡을 수 있다. 권선 공정은 순도 99.999% 이상의 구리선을 2000~3000바퀴 감아 코일을 제조하는 작업이다. 장력이 조금만 달라도 절연 성능과 소음, 수명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다른 공장에서 보기 힘든 도제식 교육이 이곳에서 여전히 이뤄지는 이유다. 허영무 LS일렉트릭 부산사업장 공장장은 “지금 3차원(3D)을 넘어 자동 설계까지 구현하고 있지만 변압기는 아직 핸드메이드 제품”이라고 말했다.
수십t짜리 철심과 권선을 결합할 때도 도면으로 알 수 없는 미세한 간극과 하중 균형을 맞춰야 한다. 절연지의 수축과 팽창, 작업장 온습도까지 고려해 손으로 미세한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작한 높이 4m, 무게 100t짜리 초고압 변압기는 테스트를 마친 뒤 다시 분해된다. 이 상태로 배에 실어 해외로 보낸다. 한국 공장에서 변압기를 조립한 기술자도 동행한다. 배가 현지에 도착하면 한국 숙련공은 변압기를 손으로 조립한다. 현지 기술자의 손기술은 아직 한국 기술자의 예민한 감각에 미치지 못한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는 1960~197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할 때 설립됐다. 당시 성장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들 기업은 제조업 뿌리인 전력기기 산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시작됐고, 경쟁력을 키워온 한국 업체들은 전 세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해 기준 미국 시장의 40%를 한국 업체가 차지했다. 한국 전력기기 3사 직원은 2023년 8589명에서 지난해 9258명으로 2년 새 700명 가까이 늘었다.
초고압 케이블의 핵심 부품인 종단 접속함은 숙련공이 없으면 제작이 불가능하다. 부품의 정렬과 결합 상태를 금형 및 절연재 조립, 제품 검수 등 단계마다 베테랑 근로자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배전 설비인 버스덕트의 절연 공정도 사람 손을 거친다. 전기가 통하는 도체에 비닐을 감싸는 작업인데, 기포 없이 붙이려면 기계로는 한계가 있다.
데이터센터를 관리할 때도 숙련공이 필수다. 전력, 냉방, 배관, 네트워크 같은 물리 인프라 문제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복구하는 건 기술자가 해야 한다. 한승연 포스코DX 프로는 “연구실에서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공장 바닥의 미세한 경사, 철강 제품의 반사광 같은 요소는 현장에서 봐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 활용도가 높은 공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한 대기업의 인공지능 전환(AX) 담당자는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늘릴수록 오히려 점검하는 인력의 숙련도가 중요해진다”며 “설비를 만져본 경험, 장애 상황에 대처하는 판단력, 공정 전체를 보는 감각은 오랜 기간 일한 숙련공에게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산=신정은/원종환/이영애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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