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소비자들이 몇 달러짜리 ‘미니 제품’에 지갑을 열고 있다. 고물가와 높은 금리,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고용 불안이 겹치면서 집과 자동차 같은 고가 제품 소비를 미루는 대신 부담 없는 ‘작은 사치’를 즐기는 게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식료품 체인 트레이더조의 2.99달러(약 4450원)짜리 미니 토트백은 출시될 때마다 몇 분 만에 품절된다. 한 사람이 대여섯 개를 사는 사례도 흔하다. 미국 대형 주택용품업체 로스에서도 2달러가 채 안 되는 초소형 플라스틱 양동이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소비자는 높이 10㎝ 남짓한 양동이를 사러 왔다가 청소용품과 수도꼭지, 가전제품 등 다른 상품까지 함께 구매한다.
로스는 “작은 양동이가 침체된 홈인테리어 시장 매출까지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한정판 색상도 출시했다.
‘미니 열풍’은 다른 산업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페르노리카는 100mL 소용량 위스키를 재출시했고, 홈디포는 2달러 미만의 소형 수납함을 선보였다. GE가전은 299달러짜리 미니 제빙기를 출시했고, 스메그는 기존보다 작은 우유 거품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비셀의 미니 카펫 청소기는 미국 내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히트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들은 작은 크기에 귀여운 디자인과 다양한 색상, 희소성 마케팅을 더해 소비자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불황이 만들어낸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본다. 기존에는 경기 침체기에 제품 용량을 줄이면서 가격은 유지하는 ‘슈링크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최근에는 기존 제품의 미니 버전을 별도 상품으로 출시하는 새로운 소비 카테고리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찰스 채핀 아이오와주립대 금융심리학 교수는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소비자는 실패 부담이 작은 저가 상품을 먼저 구매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큰 소비를 꺼리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임금 상승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AI 확산에 따른 일자리 불안, 의료비와 주거비 상승 우려까지 겹친 결과라는 분석이다. 마이클 스코델레스 트루이스트어드바이저리서비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들은 앞으로도 큰 지출보다 작은 만족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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