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결제 시장을 선도하며 한때 기업가치가 3600억달러(약 530조원)에 달했던 페이팔이 성장 둔화와 경쟁력 약화 끝에 인수 표적으로 몰렸다. 모바일 결제와 인공지능(AI) 기반 상거래 등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사이 경쟁사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인수 제안을 받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페이팔의 주가는 올해 들어 18% 내렸으며 일 년 전보다는 35% 하락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페이팔은 지난주 경쟁사인 스트라이프와 사모펀드 애드벤트인터내셔널로부터 530억달러(약 74조원) 규모의 공동 인수 제안을 받았다. 제안에는 페이팔을 비상장회사로 전환하는 조건이 포함됐다. 분기 실적과 주가 압박에서 벗어나 전면적인 사업 재편을 추진하려는 구상이다. 다만 페이팔 이사회는 주당 60.50달러를 제시한 인수안이 기업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가에서도 이번 제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1998년 설립된 페이팔은 전자상거래와 이메일 기반 결제를 개척한 대표 핀테크 기업이다. 일론 머스크와 피터 틸 등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가들이 몸담았던 회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페이팔은 2002년 이베이에 인수된 뒤 2015년 독립했고, 코로나19 기간 전자상거래 급성장에 힘입어 2021년 기업가치가 3600억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후 성장세가 둔화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최근 수년간 추진한 사업 재편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페이팔이 기존 온라인 결제 사업의 성공에 안주한 사이 애플과 구글, 삼성전자, 스트라이프, 어펌 등 경쟁사들이 모바일 결제와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빠르게 확대하며 격차를 벌렸다고 평가한다. 시장조사업체 PYMNTS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결제 시장에서 애플페이의 점유율은 페이팔을 10%포인트 앞질렀다.
AI 경쟁에서도 뒤처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페이팔은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상품을 찾고 결제까지 수행하는 '에이전트형 상거래' 대응이 경쟁사보다 늦었고 디지털 은행 등 신규 사업 기회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낮은 수수료 전략도 발목을 잡았다. 클리어스트리트의 오언 라우 애널리스트는 "페이팔이 낮은 수수료를 앞세워 시장점유율 확대에 집중했지만 이에 걸맞은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간편 송금앱 ’벤모’를 비롯한 핵심 사업의 성장 둔화와 이용자 수 정체, 신규 서비스의 부진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됐다.
이 같은 부진이 이어지자 페이팔은 최근 4년간 CEO를 세 차례나 교체하며 구조조정과 수익성 개선을 추진했다. 그러나 간편결제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주가 반등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가에서는 스트라이프와 애드벤트가 인수가를 추가로 높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두 회사는 이미 170억달러의 자기자본과 500억달러 규모의 인수금융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발표될 페이팔의 분기 실적도 변수다. 실적이 부진하면 매각 압박이 커질 수 있지만 호실적을 거둘 경우 더 높은 인수가를 제시받을 가능성이 있다. 모건스탠리는 치열한 디지털 지갑 경쟁과 성숙기에 접어든 이용자 기반을 고려하면 이번 인수 제안이 페이팔의 기업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분석했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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