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국은 처참한 패배였다. ‘인류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는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이지만 상대 역시 세계 최고의 기력(棋力)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바둑 AI 카타고였다. 신 9단은 카타고가 초반부터 꺼낸 예상 밖의 포석과 변칙 수에 흔들렸다. 그는 당시를 “바둑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일 정도로 멘털이 나갔다”고 돌아봤다. 245수 만에 불계패. 인간을 상대로 다듬어온 감각과 승부 방식이 AI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판이었다.
그러나 신 9단과 카타고의 3번기는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신 9단은 이후 두 판을 내리 이겨 2승1패로 역전했다. 특히 21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최종국에서 신 9단은 카타고를 상대로 11집 반의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최종 결과만 놓고 보면 ‘인간의 위대한 반격’이라고 환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승부의 진정한 가치는 승패 그 자체보다 인간이 AI와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어떻게 강해질 수 있는지를 실증했다는 데 있다.
3국에서는 또 다른 신진서가 나왔다. 이번에는 전투로 카타고를 넘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초반부터 실리와 두터움을 함께 확보하고, 복잡한 수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을 차단했다. 2국이 어려운 전투를 버텨낸 승리였다면, 3국은 전투 자체가 필요하지 않도록 판을 설계한 전략의 승리다. 3시간20여 분, 221수 끝에 11집 반을 남겼다.
신 9단은 중국 AI 절해와의 연습 대국 등을 통해 “전투는 자살행위”라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했다. AI를 상대로 경우의 수가 폭발하는 국면에 들어가면 인간에게는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는 설명이었다.

세 판 대국에서 신 9단은 인간의 전략이 실패를 거치며 진화하는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줬다. 첫판의 실패를 인정한 뒤 둘째 판에서는 전술을, 마지막 판에서는 전략 자체를 바꿨다. 자신의 본능까지 억누르며 언제 싸우고 언제 지킬지를 선택한 것이 역전의 바탕이었다.
이번 대국의 치수는 세 판 모두 두 점이었다. 신 9단이 흑돌 두 개를 먼저 놓고 약 18집, 승률 99%의 우위를 안고 출발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두 점이 인간에게 유리한 승부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승부를 인간이 AI를 넘어선 승전보라고만 부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6년 ‘알파고 쇼크’ 이후 한동안 인류를 사로잡은 것은 AI에 대한 무력감과 공포였다. 그러나 이번 대국은 AI가 경쟁 상대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증폭기이자 협력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대국을 기획한 홍범준 쎈수학 대표는 “AI는 주눅 들 대상이 아니라 활용하고 협업하며 공존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첫판의 패배는 도전의 한계보다 방법의 오류였을 뿐이라는 평가다.
신진서와 카타고의 대결은 내년에 다시 열린다. 카타고는 그동안 더 강해질 것이고, 신진서 역시 이번 세 판의 교훈을 새로운 전략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두 점 치수가 유지될지, 달라진 격차에 맞춰 덤이나 접바둑 방식이 조정될지도 관심을 끈다. 다음 승부에서 지켜볼 것은 누가 이기느냐만이 아니다. 진화한 AI와 그 AI에게 배워 달라진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마주 앉을지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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