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황궁보다 그 안에서 엘리자벳이 느낀 갑갑함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공간이었지만, 그에게는 감옥이나 다름없었죠.”
뮤지컬 ‘엘리자벳’의 서숙진 무대디자이너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합스부르크 황실의 웅장함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유를 갈망한 엘리자벳이 황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4년 만에 돌아오는 ‘엘리자벳’은 무대 상당 부분을 새롭게 단장했다. 과거에는 기둥과 화려한 장식을 통해 합스부르크 황실의 권위와 위엄을 부각했다면, 새 무대에는 뾰족한 선과 가시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곳곳에 배치했다. 겉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엘리자벳에게는 감옥과 같았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으로 엘리자벳의 방이 달라진다. 부드러운 커튼이 드리워진 안락한 공간에서, 화려하게 장식됐지만 인물을 찌르고 옥죄는 듯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서 무대디자이너는 “엘리자벳은 자유를 추구했지만 황궁의 엄격한 규율과 통제에 갇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었다”며 “밖에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엘리자벳에게는 감옥에 가까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를 상징하는 여섯 개의 독수리 조각상도 새 무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대공비 소피가 권력을 장악한 장면에서는 독수리들이 소피를 바라보며 무대 중심으로 모인다. 반대로 권력이 다른 인물에게 넘어가는 순간에는 독수리들이 일제히 등을 돌린다. 독수리들이 누군가를 내려다보거나 외면하는 모습을 통해 황궁 안의 감시와 고독까지 드러낸다.
서 무대디자이너는 “원래 기둥에는 방향성이 없지만 독수리로 표현하면 시선이 생긴다”며 “독수리가 누구를 바라보고 누구를 외면하는지에 따라 권력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겠다고 봤다”고 말했다.

무대 전면에는 엘리자벳을 상징하는 거대한 부채가 새롭게 설치된다. 무대 양옆에서 펼쳐지는 부채는 공간을 열고 닫으며 장면을 구분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나이가 들수록 늙어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엘리자벳이 점점 더 큰 부채를 들었다는 데서 착안했다. 무대에 놓이는 액자에도 엘리자벳을 상징하는 별 모양 머리 장식의 이미지가 반영됐다.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벳이 호숫가에서 만나는 장면도 새롭게 바뀐다. 기존의 정자 대신 나무 한 그루와 불편해 보이도록 제작된 의자 두 개가 놓인다. 1막에서는 조명이 나무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아들의 죽음 이후 같은 공간이 다시 등장하는 2막에서는 나무가 낙엽빛으로 물든다. 이 변화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과 관계가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월을 풍자적으로 압축하는 장면은 종이 인형극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바뀐다. 무대 디자인도 이에 맞춰 새롭게 구성된다.

서 무대디자이너는 2012년 국내 초연 때부터 ‘엘리자벳’의 무대를 그려 왔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벤허’ ‘모차르트!’ 등 굵직한 작품의 무대 디자인도 맡아 왔다. 그는 무대디자이너의 작업이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의상과 소품, 조명 등 여러 분야의 창작진과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마지막까지 조율하는 과정이 무대를 설계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공연을 보고 무대도 좋고 조명도 좋고 배우도 훌륭한데 이상하게 서로 어긋난다는 느낌이 든다면, 각자가 자기 이야기만 한 것입니다. 공연은 각 분야의 1이 모여 10이 되는 작업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창작 언어가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일이죠.”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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