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글로벌 주요 와인 생산지에서 포도나무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포도밭이 불길로 훼손됐고 미국에서는 와인 판매 감소로 포도나무를 줄이면서다. 세계 와인 시장 생산 기반이 흔들리면서 와인 가격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2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현지 와인 생산자들은 최근 프랑스 보르도 인근에서 일어난 산불이 포도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200년 넘게 그랑크뤼 레드와인을 생산해온 샤토 말라르틱 라그라비에르는 산불 위험 지역에서 약 10㎞ 떨어져 있다.수년간 프랑스 와인산업은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과 가뭄, 생육 기간 단축, 생산량 감소, 포도 품질 변화에 이어 산불 위험까지 더해지며 생산 부담이 커지고 있다. 와인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화재로 포도나무가 불에 타는 피해뿐만이 아니다. 나무가 탈 때 발생하는 휘발성 페놀 성분이 포도 껍질을 통해 흡수되면 발효 및 숙성 과정에서 훈연 향과 재 냄새가 나는 ‘스모크 테인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와인산업 판매 부진으로 포도밭을 갈아엎고 불태우는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 미국 농무부와 캘리포니아 식품농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캘리포니아의 포도 압착량은 276만1914t으로 전년보다 6.1% 감소했다. 20여 년 만에 가장 적은 양이다.
재배를 계속해도 팔 곳이 없자 포도밭 자체를 없애는 농가가 늘었다. 2024년 10월부터 작년 8월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사라진 포도밭은 3만8000에이커(약 153㎢)를 넘어 전체의 7%에 달했다. 포도 가격이 생산비를 밑도는 상황에서는 밭을 갈아엎는 것이 손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최근 와인 수요가 감소한 영향이 크다. 국제포도와인기구(OIV)는 작년 세계 와인 소비량을 2억800만헥토리터(hL·1헥토리터=100L)로 추정했다. 1년 전보다 2.7% 줄었다. 1957년 후 가장 적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와인 판매도 20여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건강을 이유로 음주를 줄이는 소비자가 늘고, 젊은 세대가 와인을 어렵고 보수적인 술로 인식하며 캔 칵테일, 무알코올 맥주 등을 선호하면서다.
최근 와인 가격이 하락한 것은 생산 감소에도 공급 과잉이 해소되지 않은 와인산업 특성 때문이다. 포도는 한 해 수확량이 줄어도 탱크와 오크통, 병에 담겨 유통망에 쌓인 재고가 수년간 시장에 남는다. 반대로 포도밭을 엎어 공급을 줄이면 수요가 회복되더라도 새 묘목을 심어 정상적으로 수확하기까지 여러 해가 걸린다. 현재의 과잉을 해소하려고 생산 기반을 지나치게 줄였다가 몇 년 뒤 일부 품종은 부족할 가능성도 있다. 와이너리들이 수요의 바닥을 확인하기 전에 포도밭을 없애기 어려운 이유다.
다만 와인에 따라 가격 변동 방향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기후 피해가 확인된 특정 산지와 고급 빈티지는 생산량 감소로 희소성이 커지며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소비가 빠르게 감소하는 저가 레드와인은 포도밭 축소에도 재고와 할인 경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미국 와인산업에 특화된 사업부를 운영하는 실리콘밸리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25% 와이너리는 매출은 평균 8% 증가했다. 하위 25%는 매출이 10.2% 줄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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