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초의 계절이다. 논밭의 풍성한 결실을 위해,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의 화단을 위해, 또 누군가는 전원주택의 우아함을 위해…, 온통 성가신 존재인 잡초와의 전쟁이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잡초와의 전쟁을 벌이는 모든 분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이 글을 쓰는 더임코치의 어린 시절 성장도 잡초와 함께였다. 잡초는 익숙하다. 잡초와의 전쟁 때는 유명한 전사였다. 군대에서 잡초 제거 낫질이 뛰어나다고 중대장의 칭찬도 들었다. 사실 지금도 잡초를 보면 손이 먼저 나간다. 잡초와는 전쟁 본능이 몸에 남아 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스펙 또는 배경이 없거나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는 존재를 비유할 때 우리는 흔히 '잡초'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가황(歌皇) 칭송을 받는 나훈아는 그래서 ‘잡초’라는 노래도 만들었다. ‘이것저것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네.’ 어쨌든 인간계에 온 잡초는 그렇게 나훈아에 의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잡초를 컨피던스 코칭의 시각으로 다시 보면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잡초는 단순히 버텨내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며, 나아가 자신이 속한 생태계 전체를 지탱하는 가장 위대한 기본기의 소유자다. 컨피던스 코칭의 첫 단추가 바로 이 잡초의 삶 속에 숨겨져 있다.
비옥한 전답, 광활한 골프장, 멋진 화단과 정원뿐 아니라 시멘트 보도블록 틈새, 가뭄으로 갈라진 황무지에서도 가장 먼저 싹을 틔우는 것은 잡초다. 그리고 제거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버틴다. 어쩌면 사람보다 더 마지막까지 남는다.
만약 자연계에서 잡초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토양의 유실을 막아줄 1차 그린 세이프 존(Green safe zone)이 사라진다. 이를 먹고 사는 토끼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이 고사한다. 결국 먹이사슬 최상위 육식동물과 인간조차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잡초는 나훈아 곡대로 화려한 꽃이나 달콤한 열매는 없지만, 세상 모든 생명권(Biosphere)을 밑에서 받쳐주는 '침묵의 주춧돌'이다. 잡초의 존재는 정확하게 컨피던스 코칭의 ‘존재 인정’이다.
아침 8시를 넘기면 아파트 단지에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로 단지가 들썩인다. 예초기가 어려운 화단 속은 사람들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1년에 이 작업이 적어도 서너 번 이상이다. 뽑아도, 잘라도, 약을 쳐도… 그래서 잡초와의 전쟁이다. 그 전쟁의 목표는 박멸인데, 박멸은 절대 없다. 돌아서면 다시 커 있다.
잡초와 인간의 겨루기는 결국 잡초의 승리다. 그 이유는 잡초의 기본기, 즉 생명력과 적응력이 가히 우주 최강이기 때문이다. 1년생, 2년생 등 생애주기는 짧지만 이들은 번식력으로 커버한다. 잡초의 생명력을 대적할 자는 그 누구도 없다. 호미를 든 시골 농부가, 예초기를 든 조경 전문가, 아무도 잡초의 상대는 못 된다. 잠시 ‘깔끔하다’는 안심을 느낄 뿐이다. 밟힐수록, 또 잘릴수록 바짝 낮추고, 강인한 새순을 올린다. 환경이 악화할수록 뿌리를 더 깊고 넓게 내리는 특성을 지닌다.
자신감(Confidence)도 '모든 조건이 완벽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역경과 불확실성이라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나는 어떤 환경이든 내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기본기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잡초는 환경을 탓하며 싹을 틔우길 주저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누우면서도, 오직 살아남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 무서운 적응력과 기본기야말로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춰야 할 진짜 실력이다. 잡초 같은 인생이 무서운 이유다.
흥미로운 사실이다. 자연계의 잡초가 인간 세상으로 들어오면 '경제적·문화적 선순환'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잡초는 더 이상 잡초가 아닐 수 있다. 잡초가 끊임없이 자라나니 '잡초 제거 전문 인력'이라는 일자리가 있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제초 기술 산업이 거대하게 형성되었다. 예초기와 로봇 제초기 같은 기계 산업의 발전 역시 잡초가 만들었다.
문화적으로는 어떤가? 우리나라의 고유한 '벌초(伐草) 풍습'은 잡초로 인해 형성된 대표적인 문화다. 추석을 앞두고 온 가족과 친지가 모여 조상의 묘소에서 잡초를 베어내는 행위가 벌초다. 흩어졌던 가족을 이어주고 효와 예의 가치를 되새기는 숭고한 공동체적 선순환을 끌어낸다. 심지어 대중문화에서도 잡초 중요하다. 가황 나훈아가 부른 명곡 ‘잡초’를 다시 보자. 한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이것은 ‘잡초라는 존재의 가능성이 확장성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존재와 가능성이 확장성으로 선순환되는 것이다. 그것도 딱 1년이 아니라 매년 같은 시기, 같은 질과 양, 그리고 사람들의 땀까지도 정확히 비슷하다. 예측 가능성까지 만들어 준다. 컨피던스 코칭의 핵심인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확장성’이다.
인간 세상은 잡초가 가진 이 가공할 만한 가치와 상징성을 일찍이 알아채고 다양하게 소비해 왔다.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성과를 내겠다는 인재의 강력한 생명력과 현장 적응력을 '잡초'라는 단어 하나에 담아낸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제목의 시. 여기서 ‘풀’은 잡초로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잡초에 대한 최고의 칭송이다. 바로 나, 당신, 우리 모두에 대한 칭송이다. 잡초, 분명히 뽑아야 할 인재임이 틀림없다.
컨피던스 코칭에서는 자기 인정(Self-Acceptance)을 자신감의 출발점으로 본다. 타인이 정해 놓은 화려한 화초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할 때 비틀거림이 시작된다. "그래, 나는 잡초다. 하지만 나는 어디서든 살아남고, 누구보다 뿌리가 깊다"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당당히 인정하는 순간, 남들의 평가나 비난이라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한 중심축이 생겨난다.
결초보은, 왜 풀이 소재가 되었을까? 은혜를 같은 수단이 무기도, 재물도, 그리고 권세도 아니다. '길가의 잡초'가 결정적 문제해결의 도구로 재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잡초가 묶이는 순간, 판도를 바꿀 결정적 전략(Pivot)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컨피던스 코칭이 지향하는 '가능성 발견을 통한 역량의 확장과 문제해결'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나는 특별한 스킬이 없어", "내 경력은 보잘것없어"라고 치부했던 소소한 경험과 기본기들이 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이 익숙하고 흔한 기본기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묶어내느냐(結草)'에 따라 예상치 못한 강력한 문제해결 역량이 탄생한다.
거창한 새로운 자격증이나 스펙을 찾느라 대부분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진짜 문제 해결은 이미 내 안에 무성하게 자라 있는 '잡초 같은 기본기들'이 해 준다. 어려움을 견뎌낸 경험, 사람들과의 소소한 관계성, 현장에서 구르며 얻은 잡다한 지식 같은 것들이다. 이를 재발견하고 가치 있게 묶어낼 때 발현된다. 잡초는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역량의 집합체다.
기억하시라. 화려한 장미는 가뭄이 오면 시들고, 화분이 깨지면 죽는다. 잡초는 어떤가? 보도블록 틈에서도 푸른 잎을 피워내며 생태계와 사회 전체를 지탱한다. 당신이 가진 묵묵한 루틴, 환경을 넘는 적응력, 그리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소소한 선순환은 이미 우주 최강의 무기다.
오늘, 당신이라는 '잡초'의 위대한 존재감을 인정하라. 밟힐수록 더욱더 강하게 뿌리 내리는 잡초의 자신감이 바로 지금, 당신 안에 있다. 컨피던스 코칭이 만들어 가는 세상이고, 사람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더임코치/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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