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한 잔, 프루스트 향기…늦여름의 '힉엣눙크 페스티벌'

입력 2026-08-04 18:07   수정 2026-08-05 00:36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간 사람에게서 익숙한 향기를 맡아본 경험이 있는지. 불현듯 잊고 있던 과거의 한 장면으로 시간을 돌려놓곤 한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만한 이 경험을 파고드는 음악제가 있다. 늦여름의 열기를 시원하게 식히는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이다. 올해 9회를 맞은 이 축제는 기억을 파헤치는 일상 속 감각을 조명한다.

힉엣눙크는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라는 뜻이다. 현악 앙상블인 세종솔로이스츠가 “살아있는 21세기 클래식 음악의 현장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음악제다. 이달 25일부터 9월 3일까지 열 차례의 프로그램으로 서울 예술의전당과 일신홀 등 곳곳에서 관객을 만난다. 강경원 세종솔로이스츠 총감독은 한국경제 아르떼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시간과 기억을 통해 인간의 깊은 내면과 감각을 탐구하는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올해 힉엣눙크의 하이라이트는 30일 열리는 ‘살롱콘서트’다. 이 공연은 20세기 초 프랑스 문화가 황금기를 누렸던 시기 파리의 살롱을 구현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로 추렸다. 이 소설에선 주인공이 우연히 맡은 마들렌 과자 향기가 어릴 적 기억들을 소환하는 촉매가 된다. 힉엣눙크는 공연 전 관객에게 샴페인 한 잔을 제공해 소설 내용처럼 감각을 자극하기로 했다.

강 감독은 “살롱 콘서트와 살롱 문화는 오래전부터 공연으로 구현해보고 싶었던 장면”이라며 “소설 속 인물의 사랑과 집착은 살롱 음악회라는 공간에서 고도로 증폭돼 음악의 힘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7일엔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쿠르탁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쿠르탁: 카프카-프라그멘테’를 선보인다. 연출가 캐롤 아미티지가 AI를 융합시킨 공연이다. “쿠르탁은 카프카의 일기와 편지에 담긴 짧은 문장들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게 현대인이 겪는 소외와 실존적 부조리를 음악으로 길어 올리죠.”

세종솔로이스츠는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3년 만에 재회한다. 26일 말러의 가곡 두 작품을 선보인다. ‘소년의 이상한 뿔피리’와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의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을 윤한결 지휘로 들려준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1번 ‘세리오소’를 말러가 편곡한 버전과 슈만의 현악사중주 1번의 3악장을 제프리 로프가 편곡한 버전도 연주한다.

힉엣눙크는 내년 10회를 맞는다.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탐구해온 이들이 ‘한국’을 주제로 준비하고 있다.

“MIT 미디어랩과 협업하고 있는 ‘서울 시티 심포니’의 초연이 있을 겁니다. 작곡가 토드 마코버에게 위촉한 작품으로 서울의 음악적 초상화를 보여주죠. 시민들의 인터뷰, 서울의 소리와 움직임, 도시 빅데이터 등을 음악 재료로 변환한 새로운 교향곡입니다.”

내년 10주년의 예고편과 같은 공연은 오는 25일 주한 리스트 헝가리 문화원에서 만날 수 있다. 비주얼 아티스트 데이비드 사우더의 ‘AI살롱’이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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