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생맥주에 붙는 세금이 오른다. 정부는 올해 말 생맥주에 적용되는 주세 20% 감면을 종료하기로 했다. 정치권과 보건업계에서는 가당음료에 이른바 ‘설탕 부담금’을 매기자는 논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표적인 ‘건강세’ 부과 대상인 담배 가격은 11년째 제자리다. 주요 궐련 한 갑 가격은 2015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오른 뒤 사실상 동결돼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서도 일반 궐련 담뱃세 인상은 빠졌다. 생맥주에는 내년부터 일반 맥주와 같은 세율을 적용하면서 담배에는 손을 대지 않은 것이다. 생맥주는 20L 한 통 기준 세 부담이 약 5000원 늘어날 전망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구매 가능성’이다. WHO는 한국에서 담배 100갑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0.92%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영국은 3.27%다. WHO는 한국 담배가 2014년부터 2024년 사이 실질적으로 더 부담스러워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물가와 소득은 올랐는데 담뱃값이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 가격을 통한 금연 효과가 약해졌다는 의미다. 한국의 담배 정액세에는 물가에 따라 자동으로 세금을 올리는 장치도 없다.
세금이 적은 것도 아니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의 70% 이상이 세금이다. 개별소비세와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부가가치세 등이 붙는다. WHO가 권고하는 담배 최종가격 대비 세금 비중 75%에 거의 근접해 있다. 문제는 세금의 ‘비율’보다 세액과 최종가격 자체가 10년 넘게 사실상 고정됐다는 데 있다.
정부도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발표한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는 담배 가격정책 검토가 중장기 방향으로 담겼다. 그러나 담뱃값이 1만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보건복지부는 사흘 뒤 “현재 담배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즉각 선을 그었다. 국민과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커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정부가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물가다. 2015년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80% 올렸을 당시 담뱃값 인상은 그해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58%포인트 끌어올렸다. 담배는 구매 빈도가 높고 소비자물가지수에도 포함돼 있어 가격을 한꺼번에 올리면 물가 지표에 즉각 반영된다. 최근 정부가 담뱃세 인상을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제외한 배경으로도 물가 부담이 꼽힌다.
가격정책 효과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보건복지부 금연길라잡이에 따르면 2015년 담뱃값을 80% 올린 뒤 국내 담배 판매량은 인상 전인 2014년보다 23.7% 감소했다. 2024년 국내 담배 판매량도 35억3000만 갑으로 2014년 43억6000만 갑보다 약 19% 적었다.
물론 담배회사가 정부 허가 없이는 가격을 못 올리는 것은 아니다.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판매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다만 한 갑 가격의 약 74%를 세금이 차지하는 데다 한 업체만 가격을 올리면 경쟁사에 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어 업계 전체의 큰 폭 가격 조정은 담뱃세 개편과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2015년에도 세금 인상을 계기로 주요 업체가 일제히 가격을 조정했다.
KT&G가 국내보다 해외에 성장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KT&G 해외 궐련 매출은 1조8775억원으로 29.4% 증가해 처음으로 국내 궐련 매출을 넘어섰다. 전체 궐련 매출에서 해외 비중은 54.1%까지 올라왔다. 판매량 증가뿐 아니라 해외에서 전략적으로 가격을 올린 효과가 컸다. KT&G 는 올해도 해외에서 지속적인 단가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KT&G 의 2분기 해외 궐련 매출은 5577억원으로 18.9% 늘었고 영업이익은 45.6% 급증했다. 판매량 증가와 함께 ‘전략적 단가 인상’이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반면 국내 궐련 판매량은 97억4000만 개비로 0.6% 줄었다. 국내에서는 4500원짜리 담배를 팔고, 해외에서는 가격을 올려 이익을 키우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담뱃값 4500원은 시장가격이라기보다 ‘정치적 가격’에 가까워지고 있다. 건강당국은 가격정책이 필요하다고 하고, WHO는 한국 담배가 충분히 비싸지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담배업계에서도 10년 넘게 누적된 원가 상승을 호소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물가와 ‘서민 증세’ 논란을 의식해 가격 문제를 뒤로 미뤄왔다.
생맥주 세금은 올리고 설탕 부담금까지 논의하면서 담배만 11년째 4500원에 묶어두는 것은 정책적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담뱃값 인상이 금연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됐다. 결국 정부가 담배 가격에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는 건강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물가 상승과 ‘서민 증세’라는 정치적 역풍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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