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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가 세계 최대 방위산업 시장인 미국에 K9 자주포를 수출한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미국의 포병 지원에 의존한 한국이 76년 만에 자체 개발한 자주포를 미 육군에 공급하게 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 자회사인 한화디펜스USA는 미 육군과 차륜형 자주포 K9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9일 발표했다. 미 육군의 차세대 기동전술화포(MTC) 사업에 투입될 장비다. 12문을 추가 공급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돼 향후 공급 물량은 최대 18문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계약 금액은 1억30만달러(약 1416억원)이며, 옵션을 포함한 전체 계약 규모는 최대 2억6290만달러(약 3712억원)다. 미 육군의 이번 사업 규모는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K9 자주포는 2001년 튀르키예에 수출된 것을 시작으로 세계 10개국에서 운용되고 있지만, 미국 시장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한화는 2017년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지상군협회(AUSA) 전시회에서 수십t짜리 K9 실물을 선보이며 미국 시장 공략에 공을 들였다. 9년간의 노력 끝에 한화는 독일 라인메탈, 영국 BAE시스템스 등 글로벌 방산업체를 제치고 미군에 차세대 자주포 시제품을 공급하게 됐다.
국내 방산업체가 미국에 완성형 무기체계를 공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과 중동을 넘어 세계 최강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까지 뚫었다는 점에서 K방산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K방산이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는 것은 ‘세계 4대 방산 강국’ 도약이란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유럽서 20여년간 실전경험 쌓아…미국산 포탄 맞춤형 개발도 한몫
군사원조받던 美에 수출 '이정표'…김승연 '뚝심' 김동관 '전략' 결실
한화의 K9 자주포가 세계 최대 방위산업 시장인 미국의 선택을 받은 것은 K방산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전망이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성능과 신뢰성을 검증받은 K방산이 미국이라는 최고 난도의 관문을 넘었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발판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시장 공략에 한층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군사원조받던 美에 수출 '이정표'…김승연 '뚝심' 김동관 '전략' 결실
◇전 세계에서 입증한 K9 성능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의 K9 자주포가 미국 시장을 뚫은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검증된 K9 플랫폼의 신뢰성, 미군 요구에 맞춘 신속한 개발 능력, 김승연 회장과 김동관 수석부회장 2대에 걸친 방산 사업에 대한 장기 투자다.K9은 세계 각국 군의 실제 운용을 통해 성능과 신뢰성을 검증받았다. 북한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1989년 개발을 시작한 K9은 1999년 우리 군에 먼저 실전 배치됐다. 이후 2001년 튀르키예를 시작으로 유럽과 아시아, 중동, 호주로 수출 전선을 넓혔다. 세계 10개국에서 운용되는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특히 핀란드와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은 첫 구매 이후 K9 추가 도입에 나섰다. 방산업계에선 기존 운용국의 재구매가 신규 고객 확보보다 무기체계의 신뢰성을 더 잘 보여주는 성적표로 평가된다.
K9의 또 다른 강점은 국가별 운용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사막과 고지대 작전을 고려한 인도의 K9 바지라, 혹한 환경에 맞춘 노르웨이의 K9 비다르, 핀란드형 K9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 육군은 운용 중인 M777 견인포 등을 대체하기 위해 기동성이 뛰어난 차세대 자주포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을 계기로 포병의 생존 조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화가 이번에 제안한 K9MH는 기존 궤도형 K9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차륜형 자주포다. 험지를 돌파하는 능력과 방호력이 강점인 궤도형에 비해 차륜형은 도로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장거리 전개와 유지·운용에도 유리하다.
무엇보다 한화가 독일과 영국 등 경쟁사를 따돌릴 수 있던 이유는 속도다. 미 육군은 2024년 8월 방산업계를 상대로 정보요청서(RF)를 보냈다. 한화는 ‘반드시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집념 아래 개발에 들어간 이후 6개월 만인 2025년 상반기 기본설계와 상세설계를 완료했다. 올해 1분기 차륜형 K9MH의 시제품도 제작했다. 개발 착수부터 시제품 제작까지 걸린 기간은 1년여에 불과하다.
◇세계 4대 방산 강국 도약
이 같은 승부의 배경에는 김 회장과 김 수석부회장 2대에 걸친 방산 사업에 대한 집념과 투자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회장은 ‘자주국방’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2000년대 초 전술다연장체계 천무 개발이 대표적이다. 당시 방위사업청은 한화가 선행 투자와 개발에 나서줄 것을 제안했는데, 경영진은 국내 첫 무기체계 개발이라는 점에서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실패해도 좋다. 자주국방을 위한 기술은 남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김 회장은 2024년 11월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장도 맡아 방산·항공우주 사업을 챙기고 있다.김 수석부회장은 미국 방산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현지 조직과 인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방산기업과 미국 정부 출신 인사를 잇달아 영입했다. 2024년에는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미국 내 제조 기반을 확충했다.
이번 수주는 정부와 기업이 ‘원팀’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한 민관 협력의 성과이기도 하다. 한화와 방사청은 사업 초기부터 최종 수주까지 주요 현안을 수시로 공유하며 공동 대응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한국 방산이 세계 최고 기술 수준의 방산시장에 진출해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정은/강해령/송준영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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