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희망'이 반도체 악재로…'반년새 7배' 앤스로픽 매출 실망론

입력 2026-08-19 11:27   수정 2026-08-19 11:30

'AI 희망'이 반도체 악재로…'반년새 7배' 앤스로픽 매출 실망론

비상장 스타트업의 연환산 매출이 반년새 7배 불었다는 놀라운 숫자가 하루아침에 인공지능(AI) 주식의 희망에서 악재로 돌변했다. 미국의 프런티어 모델 클로드를 개발·운영하는 앤스로픽 이야기다. 앤스로픽의 성장세가 시장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해석이 확산하면서 금리 상승으로 위축됐던 반도체·기술주에 추가 차익실현의 빌미가 됐다.


19일 유가증권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7%, 삼성전자는 6% 급락하며 거래를 시작했다. 코스피는 올해 들어 25번째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18일(미국 동부시간) 뉴욕증시도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5% 급락한 채 마감했다. 마이크론은 7%, 샌디스크는 9% 하락했고 엔비디아도 2% 넘게 내렸다.

최근 증시의 직접적인 악재는 국제유가와 장기금리의 상승세다. 그러나 고금리 우려에 얼어붙은 AI 기술주 투심을 더 냉랭하게 만든 건 앤스로픽의 성장 둔화 우려였다.

전날 블룸버그통신은 앤스로픽의 7월 말 연환산매출(ARR)이 650억달러 이상이라고 보도했다. 작년 말 약 90억달러에서 7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블룸버그는 "오픈AI는 최근 연환산매출이 4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한때 '언더독'이었던 앤스로픽"이 오픈AI를 앞질렀음을 시사했다. 올 가을로 예상되는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성장 동력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숫자를 뜯어보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절대적인 성장률은 여전히 놀랍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성장 궤적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해석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앤스로픽이 공식적으로 밝힌 ARR은 5월 말 기준 470억달러. 7월 말 650억달러와 비교하면 5~7월 성장률은 38%, 월평균 성장률은 약 17.6%였다. 로이터는 이를 두고 "4월 58%, 5월 57% 대비 성장률이 둔화됐다"며 "극단적으로 높았던 성장 속도에 비하면 감속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의 추정치에도 못 미쳤다. AI 기업의 실시간 매출을 추적하는 데이터업체 티커트렌드는 지난 7월 22일 기준 앤스로픽의 ARR을 743억달러로 추정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를 토대로 7월 말 앤스로픽의 ARR이 적게는 700억~750억달러, 많게는 800억달러 안팎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인베스터스비즈니스데일리는 "시장에서 거론되던 앤스로픽의 ARR 추정치보다는 650억달러가 낮았다는 점이 기술주 약세의 한 가지 요인으로 지목됐다"고 전했다.
문제는 매출이 아니라 '기대의 속도'
AI 인프라주는 그동안 AI 기업들의 폭발적 성장이 천문학적인 데이터센터 투자를 정당화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먹고 자랐다. AI 도입 속도가 빨라지고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GPU와 메모리,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 AI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대로 프런티어 AI 시장의 선두주자 앤스로픽조차 시장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 기업의 매출 성장세가 예상보다 빨리 둔화할 경우 지금의 대규모 자본지출을 얼마나 오래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는 먼 미래의 성장보다 당장의 투자 효율과 현금흐름을 따지는 투자자들의 압박이 더 커진다.

반론도 있다. 기술주 전문 헤지펀드 아트레이디스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CIO) 개빈 베이커는 "앤스로픽의 연환산 매출 650억달러라는 숫자가 사실이라면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했다. 그는 컴퓨팅 용량 부족에 시달려온 앤스로픽이 최근 오픈AI와 오픈소스, 그록 등 다른 AI 모델의 추격에 점유율을 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커는 "그런데 이 정도로 성장했다면 엄청난 속도이며, AI 시장 전체로 봐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점유율을 일부 잃고 공급 제약까지 겪는 기업의 매출이 이처럼 빠르게 늘고 있다면, 오히려 AI 시장 전체의 수요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로 봐야한다는 뜻이다.

앤스로픽 역시 경쟁자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ARR를 더 끌어올리려면 부족한 컴퓨팅 용량을 추가 확보하기 위한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숫자는 성장 둔화가 아니라, 공급 제약 속에서도 확인된 AI 수요 강세의 증거라는 주장이다.
투자효율, 현금흐름...더 깐깐해질 시장
고금리의 압박에 놓은 시장은 AI 기업에 한층 더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폭발적인 성장은 물론, 그 성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그 투자보다 매출과 현금흐름을 더 빠르게 늘리는지를 함께 따지기 시작했다.

삭소마켓의 수석 전략가 차나나는 "시장은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현금을 다시 투자해야 하는지, AI 매출 성장률이 자본지출과 감가상각·운영비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른지 등을 더 면밀하게 따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AI 기업들은 경쟁 때문에 투자를 멈출 수 없는 구조"라며 시장 지배력과 튼튼한 재무구조를 가진 기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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