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P-1 비만치료제가 소비자의 식욕을 크게 줄이자 미국 대형 식품업체들도 소용량·고단백·고섬유 제품을 앞세운 대응에 나서고 있다. 더 많은 음식을 판매해 성장한다는 식품산업의 사업모델이 흔들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가공식품 제조 기업 콘아그라는 최근 전자레인지로 조리한 달걀과 감자, 소시지에 치즈 소스를 곁들인 아침 식사 제품을 놓고 소비자 만족도를 점검했다. 참석자가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제품이 얼마나 만족도를 줄 수 있는지 살핀 이 실험의 목적은 식욕 자체가 약해진 소비자에게도 먹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킬 제품을 찾는 것이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2005년 GLP-1을 2형 당뇨병 치료제로 승인했다. 인슐린 분비와 위 배출 속도, 식욕을 조절하는 체내 호르몬을 모방하는 약물로, 체중 감량 효과가 부각되면서 2017년 오젬픽, 2021년 위고비가 승인됐고 이후 마운자로와 젭바운드 등이 등장했다. 미국의 GLP-1 관련 지출은 2018년 137억달러에서 2023년 717억달러로 급증했다.
확산 속도는 식품업계가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모건스탠리는 2035년 미국 인구의 15%인 최대 5500만명이 GLP-1을 사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KPMG는 복용자의 칼로리 섭취량이 약 20%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했고, JP모건은 이로 인해 식음료업계의 연간 매출이 이르면 2030년 300억~550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GLP-1 사용자가 단순히 덜 먹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밥 놀런 콘아그라 성장과학 담당 수석부사장은 "GLP-1을 복용하면 음식에 대한 갈망과 욕구 자체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맛 자체에 대한 반응도 달라질 수 있다. 식품 연구개발업체 맷슨의 조사에서 GLP-1 복용자들은 과거 좋아했던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반복적으로 나타냈다. 음식이 스티로폼처럼 느껴진다는 평가도 나왔다.
콘아그라는 강한 자극보다 익숙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에 주목하고 있다. 톰 프레인 요리혁신 담당 부사장은 "복용자들은 케일과 섬유질 보충제로 만든 식품보다 익숙한 음식을 원한다"며 "다만 더 적은 양을 먹되 단백질 섭취는 늘리기를 원하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단백질 40g을 넣은 버펄로 맥앤치즈를 개발하고 전용 마리네이드와 그릴 자국까지 설계했다. 단백질 함량을 늘린 냉동 부리토 개발도 시도했다.
미국의 식품 대기업 제너럴밀스는 인공지능(AI) 기반 가상 소비자까지 활용하고 있다. 소비자 인터뷰와 판매 데이터 등을 토대로 오랜 다이어트 경험이 있고 GLP-1을 복용하는 30대 후반 여성 소비자를 가상으로 구성해 신제품 반응을 즉각적으로 실험한다. 이를 통해 신제품 개발 시간을 줄이고, GLP-1 친화 브랜드를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GLP-1은 기존 주사제에 이어 알약 형태 신약이 나오고 건강보험 적용도 확대되면 접근성과 가격 부담이 낮아질 전망이다. 저렴한 복제약도 판매되고 있다. 놀런 수석부사장은 "글루텐프리와 비건, 케토, 저탄수화물 등 다양한 식단 유행을 지켜봤지만, GLP-1은 다르다"며 "GLP-1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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