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할 때 고용노동부 매뉴얼에 담긴 '비슷한 사례'를 찾는 데만 공을 들이면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내놓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 참고사례를 바탕으로 결론을 끼워맞추는 방식보다 인정·불인정 사례를 함께 비교해 어느 대목에서 결론이 달라졌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용노동부는 매뉴얼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 사례뿐 아니라 불인정 사례도 확대했다. 다만 관련 사례가 폭넓게 제시됐다고 해서 이들 사건 중 유사 사례를 정답지처럼 참고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짧은 규정 몇 줄만으로 복잡한 현장 사건을 재단하는 덴 한계가 있는 만큼 서로 다른 결론의 사례들을 대조하면서 판단 기준을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는 것.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대표공인노무사는 "개정 매뉴얼은 (괴롭힘) 인정 사례와 불인정 사례를 함께 제시했는데 결론이 갈린 사례들을 비교하면서 판단의 감각을 기르라는 취지로 읽힌다"며 "사례들을 정답의 목록이 아니라 사고의 재료로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괴롭힘 조사자가 이 같은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조사 겨로가에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여서다. 조사자 입장에선 "매뉴얼 사례와 같아 괴롭힘이 인정된다"는 설명이 면피용 방어 논리로 쓰이는 셈이다. 반대로 괴롭힘 의혹을 받는 특정 행위의 목적·수단을 일일이 따져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리면 판단 결과가 공격받을 수 있다는 부담이 생긴다.
하지만 괴롭힘 조사 실무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면 서로 다른 사례를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추려내는 것이 먼저다.
실제로 관련 실무에선 순서를 바꿔야 한다. 유사 사례 검색은 조사 착수 단계가 아니라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하고 판단을 마친 뒤 검증하는 용도로 써야 한다. 괴롭힘 인정 사례를 찾았다면 가장 가까운 불인정 사례도 반드시 함께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두 사례의 결론이 왜 달라졌는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아직 판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사례를 비교할 때는 무엇이 달랐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업무상 필요가 실제로 있었는지, 같은 목적을 덜 침해적인 방법으로 달성할 수 있었는지, 행위가 반복·지속됐는지, 당사자 간 관계가 어땠는지 등을 놓고 차이를 확인하는 식이다. 이후 해당 차이를 현재 조사 중인 사건에 대입해 검토해야 한다.
괴롭힘이 인정된 뒤 징계 수위를 정할 때는 매뉴얼이 제시한 다섯 가지 요소가 기준이 된다. 지속성·반복성, 고의성, 공개성, 피해 정도, 업무관련성에서 일탈한 정도 등이다. 각 요소별 평가를 남겨두면 징계 수준을 둘러싼 다툼이 생기더라도 회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판단했는지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사례를 찾는 것보다 판단 요소에 사실관계를 하나씩 채워 넣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다음에 매뉴얼을 개정할 땐 이 같은 '사용법'을 추가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괴롭힘 성립 판단 과정에서 검토할 요소를 순서대로 제시하고 인정·불인정 사례마다 무엇이 결론을 갈랐는지 한 줄 해설을 붙이는 방식이다.
매뉴얼을 제대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는 사업주의 법적 의무와도 맞닿아 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사용자에게 객관적 조사 의무, 조치 의무를 부과한다.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전담 인사조직이 없는 사업장이나 처음 괴롭힘 조사를 맡은 직원도 따라갈 수 있도록 사례 자체보다 판단 순서를 명확히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김 노무사는 "매뉴얼의 독자는 전담 인사조직 없는 사업장과 일반 근로자"라며 "괴롭힘 사례에서 기준을 읽어내는 능력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징계양정의 다섯 요소처럼 괴롭힘 성립 판단 과정에서도 따라갈 수 있는 순서를 제시하는 것이 국민 대상 매뉴얼의 다음 과제"라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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