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자율주행 경쟁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서 1만 대 안팎의 로보택시가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모으는 사이 택시업계 반발과 정부 규제, 뒤처진 기술력이란 ‘3중 덫’에 묶이면서다. 자율주행은 데이터가 쌓일수록 지배력이 커지는 산업인 만큼 국가 차원의 자율주행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구글 웨이모는 미국 11개 도시에서 로보택시 3500여 대를 운행한다. 2020년 10월 서비스를 시작해 누적 호출이 2000만 건에 이른다. 테슬라는 운전대와 페달을 없앤 택시 사이버캡을 텍사스주 오스틴에 다음달 투입한다. 중국 바이두의 아폴로고는 중국뿐만 아니라 홍콩, 스위스 등의 28개 도시에서 1000여 대를 굴린다. 매주 데이터 축적만 약 100만 건에 달한다.
현대자동차는 테슬라 완전자율주행(FSD) 같은 레벨 2++ 차량을 2029년에야 내놓는다. 2++는 고속도로와 도심에서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주행하는 ‘핸즈프리’ 단계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택시 위주로 시장이 유지되고 있어 로보택시는 테스트조차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적데이터 美·中 수백분의 1 불과, 운행차 적어 기술격차 더 벌어져
업계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운행 중인 자율주행 택시 상당수가 고장과 안전 등을 이유로 수동 운행 중”이라며 “후진적인 규제와 뒤처진 기술 수준 탓에 미국, 중국과의 자율주행 데이터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국내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는 55곳으로 특정 노선과 구간 중심이다. 서울 로보택시는 운행 시간(평일 밤 10시~다음 날 오전 5시)과 운행 범위(강남의 20.4㎢)를 규제하고 있다. 올 1월 규제 완화 전까지는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에서 자율주행 운행을 제한하는 등 사실상 반자율주행 운행이었다.
촘촘한 규제 때문에 기술 발전 속도도 느리다. 한국 대표 자율주행업체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누적 주행 데이터는 작년 8월 기준 69만㎞. 1억6000만㎞인 구글 웨이모와 2억4000만㎞인 바이두 아폴로고의 수백분의 1 수준이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데이터 누적 거리는 112억㎞에 달한다.
자율주행은 데이터가 쌓일수록 지배력과 기술 격차가 커진다. 한국은 운행 차량 자체가 적다. 중국은 바이두, 포니AI, 위라이드 등의 업체가 베이징과 홍콩, 스위스 등에서 4700여 대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도 구글 웨이모와 아마존 등이 3000대 이상을 굴리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강남의 제한된 지역에서만 19대가 돌아다닌다.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에 따르면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의 격차는 18.8개월에 달한다. 중국보다도 8개월가량 뒤처졌다.
자율주행 시장에서 뒤처지면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다. 한국은행이 작년 9월 발표한 ‘자율주행 시대, 한국 택시 서비스의 위기와 혁신방안’ 보고서를 보면 자율주행 택시가 도입될 경우 택시 운행 비용은 마일당 0.25~1달러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마일당 2달러 안팎인 일반 택시의 14.3~5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현재 택시 운행의 10% 수준인 7000대의 자율주행 택시를 서울에 보급하면 소비자가 연 1600억원의 교통비를 아낄 것”이라며 “심야 시간대 택시 부족 현상도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는 정부 차원의 자율주행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율주행 관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인공지능 모델), 산업통상부(자동차 소프트웨어), 국토교통부(자율주행 규제·검증) 등이 나눠 맡고 있다. 각종 인허가는 지방자치단체 몫이다. 규제와 지원 정책이 제각각이다 보니 기술 개발부터 실증, 상용화까지 단계마다 다른 부처를 상대해야 하고 규제 완화 속도도 느리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자율주행차를 차세대 인공지능(AI)과 제조업 정책 틀에서 육성하고 있다. 그 중심 역할은 공업정보화부가 맡고 있다.
양길성/김우섭/정상원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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