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 마지막 주 금요일이면 마틴 루서 킹 목사가 ‘I have a dream’ 연설을 한 미국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거의 10년간 출퇴근하던 기억을 따라 포토맥강변을 자전거로 달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간 불법 도청 사건의 무대인 워터게이트호텔을 지나 케네디센터에 이르자 건물 벽을 가린 대형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트럼프케네디센터로 이름을 바꾸는 것은 불법이라는 법원 판단에도 불구하고 원상복구 대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만 간신히 가려놨다. 법무부와 노동부 건물 전면에는 이맛살을 찌푸린 트럼프 대통령의 대형 얼굴 배너가 걸려 있다.63년 전 킹 목사의 연설을 듣기 위해 수십만 명이 모인 링컨기념관 앞 반사 연못도 천막에 가려져 있다. 수면에 워싱턴 모뉴먼트가 거울처럼 비치도록 설계된 명소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백만달러를 들여 보수한 뒤 물이 썩고 녹조가 생겨 다시 공사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 앞에는 ‘대통령이 손대면 엉망이 된다’는 팻말이 꽂혀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만 명이 모여 저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부’ ‘부패 정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 킹 목사의 아들과 손녀를 비롯해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이 “킹 목사가 목숨 바쳐 지킨 투표권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들이 미국의 제도와 시스템 자체를 흔든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 그의 권위주의적 면모가 강해질수록 역설적으로 미국 건국자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했는지 더 주목받는다.
250년 전 왕과 영주가 지배하던 세계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국민이 정부를 결정한다’는 당시로선 발칙한 이상을 내걸고 세운 나라가 미국이다. 그 중심에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이 있다.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만장일치로 대륙군 초대 총사령관에 추대된 그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자신의 경험과 능력이 부족할지 모른다며 스스로를 낮췄다. 열악한 민병대를 이끌고 8년간 전쟁을 치른 뒤 미련 없이 군권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쥘 수도 있었지만 그가 물러났기에 미국은 공화국이 될 수 있었다. 권력의 정당성이 한 사람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제도와 국민의 동의에서 나온다는 원칙도 이때 뿌리내렸다. 그 선택은 개인의 미덕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가 권력을 다루는 방식의 중요한 선례가 됐다.
만장일치로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이후에도 절제를 잃지 않았다. 두 차례 임기를 마치고 거듭된 3선 요청을 거절했다. 유명한 고별사에서 정파 간 극심한 대립을 경고하고 외국에 대한 지나친 개입과 과도한 적대감도 경계했다. 워싱턴의 위대함은 권력을 얻는 데 있지 않았다. 권력을 어떻게 쓰고, 언제 내려놔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몸소 보여줬다. 스스로 물러나는 전례를 남김으로써 후대 대통령이 따라야 할 민주적 권력 이양의 기준도 정립했다.
지금 워싱턴DC 곳곳에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남기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집착과 조바심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건물에 이름을 새기고 초상화를 크게 내건다고 역사적 평가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란전쟁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지지율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억지스러운 업적 만들기에 천착할수록 권력을 절제하고 때가 되면 기꺼이 내려놓은 조지 워싱턴과의 거리는 더 멀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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