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1기 시절인 2019년, 미국은 네덜란드 ASML의 핵심 첨단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차단했다. 당시 반도체업계에선 “중국 테크굴기의 가장 아픈 급소를 찔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미세공정의 필수 무기를 빼앗긴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한국 반도체업계도 안도했다.그러나 시장의 예상은 빗나갔다. EUV라는 ‘이’가 없자 중국은 심자외선(DUV) 장비를 활용한 멀티패터닝이라는 ‘잇몸’으로 기술 우회로를 뚫었다. 중국은 범용 D램과 낸드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으며, 내년부터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수율이다.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CXMT의 HBM3(4세대) 8단 수율은 25% 수준이다. HBM3E 수율은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과의 기술력 격차는 기존 4~5년에서 최근 3년 안팎으로 줄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낸드플래시 분야에선 한국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독자 적층 기술 ‘엑스태킹’을 앞세워 300단 이상 초고층 낸드 개발에 성공하고, 200단 이상 양산 수율을 안정화하며 글로벌 낸드 점유율 3위에 올랐다. 특히 400단 이상 극초고적층의 핵심 공정인 ‘웨이퍼 투 웨이퍼(W2W)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에선 YMTC가 핵심 특허 119건을 선점했다. 낸드 분야의 양국 간 기술 격차는 1년 이내로 좁혀졌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YMTC는 내년 말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치고 낸드 1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했다.
범용 반도체시장에선 중국의 침투 속도가 더 가파르다. CXMT는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및 저전력 D램(LPDDR5X) 양산에 성공한 데 이어 샤오미 신형 폴더블폰 ‘샤오미 18 폴드’에 들어가는 LPDDR6 양산을 앞두고 있다. CXMT의 17나노급 DDR5 양산 수율은 90% 수준으로 삼성전자(92~93%)와 단 2%포인트 차다. 범용 D램 기술 격차는 1년 이내로 좁혀졌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메모리 공급난 속에 까다로운 애플마저 중국산 범용 메모리 채택을 검토할 정도다.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R&D) 로드맵 구축과 ‘원팀’ 체제 완성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막대한 재원을 쏟아붓는 중국을 이기려면 국가반도체연구소 같은 컨트롤타워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메모리, 파운드리를 아우르는 통합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며 “미국처럼 기업들이 초기 기술을 함께 개발하는 컨소시엄형 모델을 도입하고, 교수와 기업 임원 겸직을 늘려 현장 중심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채연/원종환 기자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