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만에 합격…9만원짜리 '경찰청 마크' 자격증의 실체 [불신 청구서]

입력 2026-09-03 05:49   수정 2026-09-03 08:52

2시간 만에 합격…9만원짜리 '경찰청 마크' 자격증의 실체 [불신 청구서]


'불신 청구서'는 10월 2일 형사소송법 개정법률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달라질 사법 환경의 사회적 비용을 짚어본다. 개정법 시행으로 보완수사권을 지닌 검사를 통해 미진한 수사를 걸러내던 장치가 사라지는 만큼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대가로 어떻게 되돌아오고 있는지 추적한다. [편집자주]

<i>"7월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8월 들어 상담 문의가 전월보다 두 배가량 늘었습니다."</i>

장윤기 여고생 살해 사건과 제주서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장미란 씨 사건에서 잇달아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이 불거졌다. 이로인해 그동안 흥신소와 비슷한 업종으로 치부됐던 탐정업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국가의 수사만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시민들이 직접 비용을 부담하며 민간 조사 시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실종자 수색이나 증거 수집을 맡아줄 수 있느냐는 상담 문의가 탐정사무소에 빗발치면서 일부 사무소는 의뢰를 선별해 받을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 수요에 맞춰 탐정사무소와 종사자가 빠르게 늘고 관련 자격증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탐정업을 규율하는 별도 법률이나 국가공인 자격제도는 아직 없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피해 찾아간 민간 시장에서 의뢰인이 다시 사기와 개인정보 침해, 형사처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경찰이 못 쏟는 시간·비용…탐정이 파고든 틈새
3일 국가데이터처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국내 '탐정 및 조사 서비스업' 사업체는 2020년 133개에서 2024년 447개로 4년 만에 3.4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종사자는 179명에서 539명으로 약 3배가 됐다.

증가 속도는 최근 더욱 가팔라졌다. 2023년 299개였던 사업체는 1년 만에 447개로 49.5% 증가했다. 종사자 역시 360명에서 539명으로 49.7% 늘었다.



'탐정'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영업할 수 있게 된 데다 과거 불륜·가출 등 가정사에 치중했던 의뢰가 실종·사기·스토킹은 물론 기업 횡령과 해킹 피해 확인으로까지 확장된 결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최근 공권력에 대한 불안에 더해 오는 10월 형사사법 체계 개편으로 검사의 직접수사와 송치 사건 보완수사가 폐지되면 경찰의 업무 부담과 사건 지연 우려가 커져, 증거를 직접 확보하려는 피해자들의 탐정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손상철 대한민국탐정협회 상임회장은 "탐정업이 법제화되지 않아 공식적인 시장 규모를 집계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기준 약 3000억~4000억원 규모로 추산하는 시각이 많다"며 "민간 등록 자격을 취득한 사람도 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한 탐정업체는 수억원을 횡령하고 잠적한 중소기업 임원을 한 달간 추적해 소재를 파악했고,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에는 디지털 포렌식을 통한 해킹 피해 확인 의뢰도 잇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관 출신인 김민재 명진탐정사무소 대표는 최근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이 잇따른 뒤 상담 문의가 두 배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의뢰 비용은 사건의 난도와 조사 기간에 따라 통상 330만~880만원이며, 조사는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 걸린다. 그는 "수사는 경찰이 훨씬 수월하지만 탐정은 개별 사건에 경찰보다 시간과 비용을 많이 투입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 6년 새 8배 늘어난 자격증…국가공인은 '0'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탐정의 전문성을 검증할 공적인 장치는 사실상 없다. 민간자격정보서비스(PQI)에 등록된 탐정 관련 민간자격은 2020년 16개에서 올해 8월 135개로 6년 새 8배 이상으로 늘었다.

현재 국내 탐정 자격증은 모두 등록 민간자격이다. 그러나 일부 교육업체는 '경찰청 등록'이나 '국가등록 자격'이라는 표현을 앞세워 국가공인 자격증인 것처럼 홍보한다. 실제로는 해당 민간자격의 주무 부처가 경찰청이라는 의미일 뿐 국가가 개인의 조사 능력이나 현장 경험을 검증했다는 뜻은 아니다.

취재진은 직접 탐정사 1급 자격증 취득에 도전해봤다. 전체 강의의 60%에 해당하는 강의 12개를 음소거 상태로 재생하자 시험 응시 조건이 충족됐다. 강의별 영상 길이는 10~20분으로, 불과 2~3시간 만에 시험을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교육업체가 제공한 기출문제 20개 가운데 19개는 실제 시험에 그대로 출제됐다. 문제뿐 아니라 사지선다형 보기의 순서까지 같았다. 자격증 배송료 명목으로 9만원을 결제하면 '경찰청' 마크가 붙은 탐정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 탐정학과장은 "교육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문제가 발생해도 감독하거나 징계할 기관이 없다"며 "표준계약서와 보수 기준, 비밀유지 의무, 손해배상 책임보험과 같은 소비자 보호 장치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잘못 맡기면 의뢰인도 피의자 된다

검증되지 않은 탐정이나 흥신소에 일을 맡겼다가 의뢰인까지 수사·재판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공권력을 믿지 못해 수백만원을 들이고도 민간 서비스의 적법성과 신뢰성까지 직접 확인해야 하는 구조가 또 다른 '불신 청구서'로 돌아오는 셈이다.

건설사 직원 3명은 2010년 경쟁업체와 설계심의 평가위원들의 접촉 여부를 알아보려고 흥신소에 1300만원을 주고 미행을 맡겼다가 신용정보법 위반 교사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사생활 조사를 직접 하지 않았더라도 의뢰인은 교사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8년에도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정보를 불법 수집한 흥신소 8곳과 의뢰인 145명이 함께 입건됐다.

공권력과의 유착 사례도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 7월 지명수배 정보를 탐정에게 판매한 혐의로 현직 경찰관 2명을 기소했다. 이 중 한 명은 차명으로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며 '차적 조회 15만원, 범죄수사경력 조회 80만원'이라는 가격표까지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에도 경찰 내부망에서 개인정보를 조회해 탐정에게 건넨 혐의로 경찰관이 구속됐다.

김민재 대표는 "다른 업체에서 피해를 본 뒤 다시 찾아오는 의뢰가 전체 사건의 30% 정도"라며 "사업자등록번호와 실제 사무실이 있는지, 서면계약서 작성과 카드 결제가 가능한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계약 전에는 업체가 제시한 조사 방법이 개인정보보호법·위치정보법·스토킹처벌법 등에 어긋나지 않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조사 업무를 다른 업체에 재하청하는지, 수집한 자료를 어떻게 보관하고 폐기하는지, 결과물을 어떤 형태로 제공하는지, 중도 해지와 환불 기준은 무엇인지도 계약서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 명칭만 허용됐을 뿐…커지는 시장, 법은 공백

국내에서는 개정 신용정보법이 시행된 2020년 8월 5일부터 일반 사업자가 '탐정' 명칭을 내걸고 영업하거나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명칭 사용이 허용됐을 뿐 별도의 조사 권한이 부여된 것은 아니다. 업무 범위와 금지 행위, 자격 기준, 손해배상 책임 등을 규정한 법률도 아직 없다.

탐정업 법제화는 2005년 17대 국회에서 민간조사업법안이 발의된 이후 20년 넘게 추진됐지만 관련 법안은 번번이 폐기됐다. 개인정보 침해 우려와 변호사·행정사·손해사정사 등 기존 직역과의 업무 충돌이 주요 쟁점이었다.

현재 국회에는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탐정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법안에는 국가자격시험과 경찰청 등록·감독, 서면계약 및 손해배상 책임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이미 민간 조사 시장이 형성된 만큼 법제화를 통해 소비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상당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탐정업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시장을 계속 방치하면 언젠가 큰 일이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우/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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