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밥 먹여주네"…2030 줄서서 먹는 식당의 기막힌 승부수 [트렌드+]

입력 2026-09-09 08:00   수정 2026-09-09 09:04


고전문학 《모비 딕》 속 뱃사람들이 바다 안개를 뚫고 마주하던 뜨끈한 '클램차우더', 만화 《심야식당》에서 붉은 비엔나소시지를 볶아내던 마스터의 '나폴리탄 스파게티'.

누구나 책장이나 만화 컷을 넘기다 침을 꼴깍 삼켜본 기억이 있을 법한 메뉴들이다. 상상 속에서만 맴돌던 명작 속 요리들이 서점을 넘어 실제 레스토랑의 접시 위로 걸어 나왔다. 책과 활자를 힙한 취향이자 일상으로 즐기는 '텍스트힙(Text Hip)'이 2030의 확고한 소비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식품·외식업계가 문학 작품 속 세계관을 미식 경험으로 번역해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뷔페에 차려진 심야식당·미스터 초밥왕…아워홈 '테이크 북클럽'

아워홈이 운영하는 뷔페 브랜드 '테이크(TAKE)' 종각 1호점은 대형 서점 영풍문고와 손잡고 오는 11월10일까지 '테이크 북클럽' 팝업테이블을 운영한다. 매장이 위치한 종로 영풍빌딩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살려, 문학 작품과 명작 만화에 등장하는 음식을 테이크의 뷔페 메뉴로 재해석한 기획이다.

라인업은 작품 속 상징적인 식경험을 고스란히 살렸다. 허먼 멜빌의 해양 소설 《모비 딕》에서 영감을 얻은 '클램차우더'를 비롯해,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소시지 나폴리탄', 테라사와 다이스케의 전설적인 요리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모티브로 한 '장어 오이 호소마끼' 등이 메인 테이블에 오른다.

단순히 한 끼 식사를 채우는 것을 넘어, 책을 매개로 한 미식 덕질과 문화적 경험을 레스토랑에 녹여내겠다는 취지다.
좌석마다 붙은 '도쿄·서울'…'세계 미식 여행' 정체성이 만든 문학 테이블

테이크가 서점과의 결합 및 문학 요리 재해석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브랜드 본연의 명확한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다. 테이크는 매장 좌석 상단에 '도쿄', '서울' 등 세계 주요 도시 명칭이 적힌 표지판을 배치할 정도로, 전 세계 각국의 골목 미식을 한자리에서 탐방하는 콘셉트를 표방하는 뷔페다.

실제 테이크 매장에서는 미국식 바비큐, 타코, 태국식 똠얌꿍 등 130여 종에 달하는 다국적 메뉴를 기본으로 선보이고 있다. 애초에 세계 곳곳의 음식을 다루는 유연하고 다채로운 콘셉트 덕분에, 미국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비 딕》의 수프부터 일본 골목길 정취가 담긴 《심야식당》의 파스타까지 이색적인 요리들을 자연스럽게 한 식탁 위에 올릴 수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평일 런치 2만3900원, 평일 디너 2만9900원이라는 2만 원대 가성비 경쟁력과 이색 콘텐츠가 맞물리면서, 테이크 종각 1호점은 평일 점심에도 20팀 이상의 대기 행렬이 이어지는 등 8월 말 기준 누적 방문객 9만 명을 돌파했다. 아워홈은 10월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 어드벤처 2호점에 이어 11월 강북구 미아사거리 와이스퀘어에 3호점을 열며 브랜드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편의점 빵부터 서점·도서전까지…식품·외식업계 '문학 마케팅' 봇물

이처럼 식품·외식업계가 문학을 식탁 위로 끌어올리는 배경에는 '텍스트힙'의 일상화가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내가 무엇을 읽느냐'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 자신의 감각과 취향,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됐다. 책을 일종의 힙한 놀이 문화로 즐기는 흐름이 확산하자, 기업들도 이들의 취향을 공략하기 위해 문학을 먹거리와 연결 짓고 있는 셈이다.

실제 성공 사례는 폭발적인 파급력을 입증했다. 최근 GS25가 민음사와 손잡고 선보인 '문학빵' 4종(오만과 편견·사랑에 대하여 등)은 출시 일주일 만에 20만 개가 팔려나가며 편의점 빵류 매출 1~4위를 싹쓸이했다. 앱으로 재고를 찾아 헤매는 '앱 오픈런'과 빵 속에 든 세계문학전집 책갈피를 뽑아 SNS에 인증하는 '책갈피깡'이 번지면서 품귀 현상을 빚었다.

이 밖에도 오뚜기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와 함께 식문화와 책을 결합한 큐레이션을 완판시키는 등 책과 식음료의 경계 허물기는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화면에 지친 젊은 세대에게 활자와 문학은 가장 신선하고 세련된 문화 콘텐츠로 꼽힌다"며 "책 속 스토리를 혀끝으로 직접 확인하고, 이를 SNS로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외식업계가 놓칠 수 없는 강력한 팬덤 비즈니스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삼성바이오로직스현대차삼성전자트럼프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