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 4번째 ‘연간 1조달러 수출’이라는 고지 달성을 목전에 두게 된 배경에는 글로벌 인공지능(AI) 열풍이 자리 잡고 있다. AI 가동에 필수적인 반도체와 컴퓨터·주변기기 등이 폭발적인 수출 호조를 보인 덕분이다. 지난해 나란히 역성장했던 미국과 중국 양대 시장 수출이 각각 57.0%, 76.1% 급증세로 돌아선 것도 현지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들이 K반도체를 앞다퉈 사들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지역별로는 전쟁 여파가 지속된 중동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수출이 일제히 플러스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수출 감소세를 보였던 주요국들의 반등이 두드러졌다.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곳은 홍콩이다. 작년 0.5% 감소했던 대(對)홍콩 수출액은 올해 들어 지금까지 170.7% 폭증했다.
홍콩은 항만 인프라를 바탕으로 동남아와 제3국을 잇는 중개무역항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중국 내 대표적 전자산업 거점인 선전과 맞닿아 있어 국내 기업들이 직수출 대신 우회 수출 통로로 적극 활용하며 물량이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홍콩의 뒤를 이어 중국, 미국, 일본 등 주요 교역국 수출도 일제히 전년도 감소세를 털어내고 증가세로 돌아섰다.
품목별로는 반도체가 전체 수출의 40.6%를 차지하며 단연 성장을 주도했다. 수출액만 전년 동기 대비 2.7배 늘었다. AI 서버용 저장장치(SSD) 등 컴퓨터·주변기기도 같은 기간 3.6배 가량 폭증했다. 이외에도 석유제품, 철강제품, 무선통신기기, 정밀기기 등이 감소세에서 벗어나 반등했고 가전제품 역시 감소 폭을 좁혔다. 반면 주력 품목이던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은 관세 장벽과 글로벌 수요 둔화 여파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성장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출 업무를 관장하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중간재 중심의 대중 수출 공식이 무너졌다고 보고 최근 K소비재 수출 전략에 유독 공을 들이고 있다. 김 장관이 서울 집무실 벽에 중국 전도를 걸어두고 각 성(省)별 수출 실적을 직접 챙기는 것도 14억 중국 내수 시장의 빗장을 풀 열쇠가 결국 완제품 소비재에 달려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소비재는 전 세계 시장에서 한국 수출의 안정적인 버팀목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올해 1~8월 누적 5대 소비재(화장품·식품·패션·의약품·생활용품) 수출액은 335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7% 증가했다.
대중국 소비재 수출은 올해 7월까지 전년 동기보다 8.5% 늘어난 40억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의 궈차오(애국 소비) 영향 등으로 화장품 수출액(12억달러)이 동기간 3.6% 줄었음에도, 라면·음료 등 농수산식품(13억달러)이 15.0%, 패션의류(5억달러)가 30.7% 급증한 덕분이다. 정부는 소비재를 대중 수출의 새로운 주력군으로 키우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한류 스타 공연 연계 마케팅 등을 신규 반영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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