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간 '자산 396배·매출 112배' 키운 김승연 한화 회장

입력 2026-09-14 07:58  



김승연(74) 한화그룹 회장이 올해 취임 45주년을 맞았다. 화약사업에 치중됐던 한화그룹은 1981년 김 회장이 총수에 오른 뒤 석유화학·유통·레저를 시작으로 금융·태양광, 방산·조선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대한생명, 큐셀, 삼성 방산·화학 4개사,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 침체기마다 단행한 선제적 투자가 밑거름이 됐다. 재계에서 김 회장을 ‘인수합병(M&A)의 마법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김 회장 취임 당시 8000억원 수준이었던 한화그룹의 총자산은 45년이 지난 올해 299조원으로 396배, 같은 기간 매출액은 1조원에서 123조원으로 112배나 껑충 뛰었다. 한화그룹은 올해 5월 공정위가 발표한 기업 자산 순위에서도 롯데그룹을 제치고 5위에 올랐다. 1952년 모태인 한국화약 설립 이후 74년 만에 ‘5대 그룹’에 입성한 것. 그사이 대한민국도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탈바꿈하며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한화에서 나아가 한국 경제를 관통하는 김 회장의 ‘승부사 리더십’, ‘신용과 의리’, ‘사업보국’ 경영철학을 되돌아봤다.

도전·결단 45년 ‘승부사’

김 회장은 1981년 한화그룹 창업자인 부친 김종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타계하며 29세의 젊은 나이에 총수 자리에 올랐다. 그는 별도 취임식 없이 신입사원들과의 대담 자리에서 “함께 보람 있는 삶,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세계 속으로 뻗어나갑시다”라고 의지를 다졌다. 화려한 선언 대신 임직원을 먼저 챙기겠다는 이 다짐은 45년째 이어지고 있다.

김 회장은 적자에 시달리는 기업이나 다른 그룹의 비주력 계열사들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취임 이듬해인 1982년 적자 상태였던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현 한화솔루션 케미칼·첨단소재 부문) 인수를 결정한다. 1981년 ‘제2차 오일쇼크’로 세계 석유화학 경기가 바닥을 치던 시점이었다. 그룹 중역들도 인수를 반대했다. 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 석유화학도 살아난다”며 인수를 밀어붙였다. 대신 인수금액 전액 분할 납부 등 한화 측에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냈다. 석유화학 계열사는 인수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돌아섰고 한화그룹이 10대 그룹에 진입하는 밑거름이 됐다. 1980년 73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1984년 2조15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성장했다. 김 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1985년 정아그룹(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과 1986년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을 인수하면서 유통·레저 사업에도 진출했다.

김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은 위기 때 더 빛을 발했다. 2002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누적 결손금이 3조원에 달했던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가 대표적이다. IMF 이후 제조업 분야 대기업이 금융기관을 인수한 첫 사례였다. 세간의 ‘승자의 저주’ 우려에도 김 회장은 금융업에 미래가 있다고 봤다. 당시 김 회장은 (주)한화 등 당시 맡고 있던 모든 계열사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2년간 무보수로 대한생명 경영 정상화에 매달렸다. 대한생명은 한화에 인수된 지 6년 만인 2008년 누적 손실을 완전히 해소했다.

2012년에는 태양광 셀 생산능력 세계 1위였다가 파산한 독일 기업 큐셀(현 한화큐셀)을 인수했다. 누적 영업적자가 4420만달러에 이르고 공장 가동률도 20~30%에 그쳤던 회사였다. 김 회장은 태양광 시장이 2014년 이후 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수직계열화와 규모의 경제를 감안해 인수를 결정했다. 한화큐셀은 인수 1년여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현재 미국 주거용·상업용 모듈 시장에서 수년째 점유율 1위를 지키는 글로벌 태양광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김 회장의 리더십이 성과를 거둔 또 다른 사례로는 2015년 삼성그룹과의 ‘빅딜’이 회자된다. 삼성의 방산·화학 4개 계열사(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토탈에너지스·한화임팩트 등)를 인수하는 2조원대 초대형 딜이었다. 규모는 물론이고 사업 면에서도 한화그룹이 기존 탄약, 정밀유도무기 중심에서 자주포, 항공기·함정용 엔진, 레이더 등 방산 전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한화는 2022년 대우조선해양 인수(2023년 한화오션 출범), 2024년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를 통해 조선업에도 뛰어들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화시스템(방산 IT), 한화오션(해양방산)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사업구조를 완성했다. 한화의 방산은 육상 무기체계에서 우주 발사체·위성까지 아우르는 ‘우주·방산·해양’ 통합 안보 솔루션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M&A는 시장이 등을 돌린 불황기나 ‘성공하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여겨졌던 순간에 이뤄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뒤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김승연 회장의 뚝심이 있었다. 올해 7월에는 김동관 부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김동원·김동선 형제가 각각 부회장과 사장으로 나란히 승진하며 ‘3세 경영체제’가 본격화됐다. 방산·해양·우주항공·에너지 부문의 성장을 주도해온 김동관 수석부회장을 필두로 금융 디지털전환은 김동원 부회장이, 유통·레저·첨단산업장비 부문은 김동선 사장이 이끄는 구조다. 창업주에서 2세, 그리고 3세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는 “회사, 임직원, 주주 모두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한화식 성장 서사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IMF 위기 ‘신용·의리’ 돌파

1997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한화그룹도 존폐의 기로에 섰다. 기아와 한보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진 가운데 한화도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1998년 2월 한화에너지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김 회장은 계열사 주식과 금융자산, 부동산 등 사재를 담보로 내놓고 경영권 포기각서까지 제출하며 회사를 지켰다.

김 회장의 구조조정 원칙은 명확했다. 구조조정 대상 회사 구성원의 고용승계와 인수기업과의 상생, 그리고 대의를 위한 희생과 양보다. 한화에너지 정유부문을 현대정유에 매각하는 협상에서 김 회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근로자를 한 명도 해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신속히 매각을 추진하자”고 했다. 실제 한화에너지와 한화에너지프라자 임직원 1162명 전원의 고용이 승계됐다. 같은 해 경향신문 계열분리 과정에서도 김 회장과 한화종합화학이 보유한 주식 전부를 사원 우리사주조합에 무상양도하고 부채 5300억원까지 부담하기로 했다. 혹독한 구조조정 시기였음에도 회사를 떠난 이들을 향한 손편지는 멈추지 않았다. 1998년 말 김 회장은 매각과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5000여 명에게 친필 연하장을 보내 “지난날 같은 깃발 아래 한솥밥을 먹던 소중한 인연을 되새기자”며 안부를 전했다.

이처럼 ‘신용과 의리’로 요약되는 김 회장의 사람 중심 경영철학은 위기 국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0년 서울 소공동 더 플라자호텔 리모델링으로 근무지를 잃게 된 직원 600여 명을 구조조정 대신 4개월간 유급휴직으로 처리해 고용을 지켰다. 2015년 한화케미칼 공장 폭발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6명이 사망하자 이들에게 한화그룹 임직원에 준하는 보상을 지시했다. 부친 김종희 선대회장이 지키지 못하고 떠난 리처드 워커 전 주한미국대사와의 회갑 약속을 1982년 대신 지키고 2002년에는 20년 전 다짐했던 팔순잔치까지 챙긴 일화는 신용과 의리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원칙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꼽힌다.

이 철학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김 회장은 코로나19 당시 확진 판정을 받은 임직원들에게 회사 차원의 공지 없이 개인적으로 위로 난과 손편지를 보냈고, 2021년 누리호 1차 발사가 실패하자 관련 임직원 80여 명에게 낙담 대신 격려 편지와 과일바구니를 전했다. 올 8월에는 회삿돈이 아닌 사재 약 30억원을 들여 국내 한화그룹 임직원 6만9000여 명 전원에게 삼계탕과 갈비탕 등으로 구성된 보양식 세트를 선물했다. 위기 때는 사재를 던져 사람을 지키고 평소에는 작은 정성으로 마음을 챙기는 태도가 45년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신용과 의리는 회사 구성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999년 김승연 회장은 회사가 보유한 화약 기술을 시민들이 즐길 문화행사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2000년부터 26년째 이어온 한화서울세계불꽃축제가 시작된 배경이다. 한화는 매년 100억원이 넘는 행사비를 전액 부담하며 시민들에게 가을밤 불꽃을 선사하고 있다.




‘사업보국’ 정신 앞세워 글로벌 진출

‘사업보국(事業報國)’은 화약 국산화로 국가 재건에 헌신했던 창업주 김종희 선대회장 때부터 내려온 한화의 뿌리 깊은 신념이다. 김승연 회장은 이 정신을 ‘회사의 이익이 아닌 국가와 인류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언어로 계승해왔고 태양광과 방산 사업 확장 판단의 기준이 됐다.

김 회장은 2006년 그룹 창립 기념식에서 “글로벌 시대에는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는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본능을 배워야 한다”며 ‘글로벌 경영’을 화두로 던졌다. 김 회장 개인의 폭넓은 민간 외교 네트워크도 글로벌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2000년 한·미 협력의 민간 채널인 한미교류협회 초대의장을 맡았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취임식과 국정연설 참석,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오랜 교분 등으로 재계에서 손꼽히는 ‘미국통’으로 통한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퓰너 창립자와는 40년 가까이 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이 워싱턴 펜실베니아가에 있는 헤리티지 의회빌딩 2층 콘퍼런스센터를 ‘김승연 콘퍼런스센터’로 명명한 이유다.

사업보국이 극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순간은 2014년 삼성그룹 방산 계열사 인수 결정이었다. 연이어 터진 방산비리 사건으로 방위산업에 대한 이미지가 나빴던 데다 국방부 외에는 뾰족한 발주처가 없는 사업 특성상 이른바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한화그룹 내부에서도 인수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삼성 방산 계열사 인수 안건을 보고받은 김승연 회장도 “다른 대기업이 모두 포기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이라며 창업 때부터 강조했던 사업보국의 정신을 당부했다. 삼성 방산 계열사 인수 결단은 한화를 국내 1위 방산기업이자 글로벌 방산기업으로 도약시킨 출발점으로 꼽힌다.

한화가 출범한 1952년 한국은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미국의 무기 원조 없이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나라였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올해 8월 한화디펜스USA는 미국 육군과 K9 차륜형 자주포(K9MH) 시제품 6문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국산 완성 무기체계가 미군 체계에 진입한 첫 사례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세계 최강 군사대국의 포병전력 재건을 지원하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게 방산업계의 평가다.

한화 K9 자주포의 미국 진출은 미군의 차륜형 자주포 수요 증가를 예측하고 2024년 3월 미 육군 예산안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해 즉시 개발에 착수한 김동관 수석부회장의 치밀한 준비와 오랜 세월 쌓아온 김승연 회장의 미국 내 네트워크, 그리고 ‘방산을 내수산업이 아닌 수출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그룹의 신념이 함께 만들어낸 결실이다. 시제품 계약을 넘어 양산 단계에 이르면 수조원대 추가 수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기세를 몰아 8월 말 스페인 방산업체 인드라시스템스와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맺었다. K9 자주포로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이자 품질을 엄격하게 따지는 미국에 진출한 이후 스페인까지 뚫으며 K9의 서유럽 첫 수출이란 기록도 세웠다. 국산 완성형 무기 체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자 방산 강국이 포진한 서유럽에 처음 수출되는 것으로 유럽의 공고한 ‘방산 블록’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2001년 튀르키예 기술이전을 시작으로 25년간 이어져 온 K9 자주포 수출은 폴란드·노르웨이·호주·인도·핀란드·루마니아 등으로 확대돼 누적 1500여 문, 15조원 규모의 계약을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실전 검증과 나토 호환성을 앞세워 유럽 재무장의 핵심축으로 부상했다. 변방의 무기였던 K9이 이제 유럽 방산 공급망의 일원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한화는 2024년 12월 한국 기업 최초로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미국 함정 건조·정비 사업의 전초기지를 확보했다. 최근 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의 해상 미사일 시험 계측선(MRIV) 건조 사업자로 선정되며 미국 함정사업 진출의 신호탄도 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 해군의 차세대 프리깃함 건조 사업과 관련해 “한국의 한화라는 좋은 회사와 협력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힘을 실어준 1500억달러 규모의 한·미 조선 협력 구상, 이른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중심에도 한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국가안보각서에 따르면 미국 조선소에 ‘상당하고 지속적인 투자’(substantial and durable investments)를 한 외국 조선업체는 한시적으로 본국 조선소에서 최대 2척의 함정을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미 해군의 전력 공백을 신속히 메우기 위한 것으로 현재 이 조건에 부합하는 한국 기업은 한화가 유일하다.

○“100년 기업 향해 가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매년 신년사와 창립기념사를 통해 변화와 혁신을 주문해왔다. “노련한 선장은 결코 한곳에 닻을 내려 고기를 기다리지 않는다”(2006년), “새는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2017년), “세상에 햇살이 뚫고 나오지 못할 두꺼운 구름은 없다”(2020년) 등 김 회장의 당부는 위기를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도약의 발판으로 여기는 태도를 관통한다. 그는 2021년 취임 40주년을 맞아 “40년간 이룬 한화의 성장과 혁신은 한화가족 모두가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며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100년 기업 한화를 향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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