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내년 메모리 대란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탄 CEO는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AI 인프라 서밋’에서 “메모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사업 확대가 늦어지는 기업이 많다”며 “일부 메모리 가격은 5배, 6배, 심지어 7배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스마트폰이나 PC 가격도 끌어올리고 있다. 같은 생산설비에서 어떤 제품을 얼마나 만들지를 놓고 HBM과 범용 D램이 경쟁하기 때문이다. 탄 CEO는 “보급형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만들면서 제품 원가의 70~80%를 메모리에 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메모리 가격 급등이 계속되면 수익성이 낮은 보급형 정보기술(IT) 기기부터 생산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인텔이 주목하는 해법은 메모리를 연산칩 가까이에 붙이는 첨단 패키징이다. 기존 서버에서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가속기, 메모리가 떨어져 있어 데이터가 오가는 데 시간과 전력이 든다. 반면 첨단 패키징은 CPU와 AI 가속기, HBM, 입출력 칩을 하나의 거대한 반도체처럼 연결한다. 칩 사이의 거리가 짧아져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함께 높일 수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일변도의 AI 인프라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GPU는 범용성이 높지만 전력 소비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인텔이 투자한 삼바노바와 세레브라스시스템스를 사례로 들며 “이들 아키텍처는 10분의 1 수준의 전력으로 성능을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는 CPU와 GPU, 신경망처리장치(NPU), 용도별 가속기가 일을 나눠 맡는 ‘이기종 컴퓨팅’이 확산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패키지도 거대해진다. 탄 CEO는 “중앙에 CPU를 놓고 주변에 HBM과 고속 입출력 장치를 배치해야 한다”며 “차세대 AI에는 매우 큰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텔은 칩 전체를 덮는 대형 실리콘판 대신 필요한 부분만 작은 실리콘 다리로 연결하는 ‘EMIB’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대형 패키지를 비교적 유연하게 만들 수 있어 TSMC의 ‘CoWoS’에 맞설 인텔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탄 CEO는 이 전략을 이석희 인텔 파운드리 수석부사장에게 맡겼다. 이 부사장은 SK하이닉스와 SK온 CEO를 지냈으며 과거 인텔에서 약 10년간 근무했다. 지난 6월 인텔로 돌아와 첨단 패키징과 시스템 통합, 후공정 기술 개발 및 생산을 총괄하고 있다. 탄 CEO는 “이 수석부사장이 합류해 매우 기쁘다”며 “그는 원래 인텔 출신이어서 내가 다시 돌아와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양산 경험과 인텔 내부 사정을 모두 아는 이 부사장을 앞세워 AI 가속기와 HBM을 결합하는 사업을 키우겠다는 뜻이다.
다만 기술만으로 패키징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AI 칩을 올려놓는 패키지 기판 공급이 부족해서다. 탄 CEO는 “핵심 기판 공급업체가 일본 두 곳과 대만 두 곳 등 네 곳뿐”이라며 “고객을 위해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큰 과제”라고 말했다. 패키징 수율과 성능, 생산주기를 안정시키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았다.
인텔은 지난해 9월 체결한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탄 CEO는 “모든 것을 직접 소유할 수는 없다”며 “인텔의 CPU와 엔비디아의 GPU와 NV링크를 결합해 양사가 아직 공략하지 못한 시장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하면서도 필요한 분야에서는 협력하는 ‘코피티션’ 전략이다.
인텔이 AI 가속기 시장에서 겪은 실패도 인정했다. 인텔이 2019년 인수한 하바나랩스의 창업자와 핵심 인력이 회사를 떠나면서 AI 칩 ‘가우디’가 기대만큼 시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탄 CEO는 “창업자에게 권한을 주고 인텔을 자신의 집처럼 느끼게 했어야 했다”며 “인텔이 모든 것을 안다는 태도로 접근해 인재를 잃었다”고 말했다.
탄 CEO는 최근 업계에서 화두가 된 'AI 속도조절론'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조정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과민반응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AI는 인터넷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실리콘밸리 밖에서 커지는 반(反)AI 여론을 경고했다. "실리콘밸리는 거품같은 곳이어서 모두 AI에 열광하지만, 미국 다른 지역에서는 AI 반대 정서가 매우 커졌다"는 것이다. 탄 CEO는 “보안과 개인정보 침해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며 “새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한 긍정적인 서사를 만드는 것도 업계 지도자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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