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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가 왜 이렇게 조용해?"…16년차 연구원도 놀란 '역발상'

입력 2026-09-26 16:18   수정 2026-09-26 17:07

"SUV가 왜 이렇게 조용해?"…16년차 연구원도 놀란 '역발상'


최근 르노코리아의 필랑트 시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승차감과 정숙성이었다. 덩치 큰 차체인데도 노면에서 올라오는 잔진동과 충격이 실내까지 거칠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숙성도 마찬가지다. 고속으로 달려도 타이어에서 올라오는 소음이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이 부드러움 뒤에는 차량 개발 초기부터 르노코리아와 손발을 맞춘 금호타이어의 신차용(OE) 타이어가 있었다.

지난 2일 경기 용인 금호타이어 중앙연구소에서 그랑 콜레오스·필랑트에 들어가는 245/45R20 규격 타이어 '크루젠 HP71'의 개발 뒷이야기를 들었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이재현 책임연구원은 "르노코리아가 요청한 회전저항 수준이 국내 고객사 중에서도 까다로운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OE 타이어는 차량 자체와 별개로 움직이는 부품이 아니다. 신차 기획 단계부터 완성차 업체와 타이어 업체가 원하는 승차감, 정숙성, 연비, 핸들링 값을 함께 정하고 그 목표에 맞춰 처음부터 새로 설계한다.이 책임연구원은 2008년 입사 이후 줄곧 르노코리아 담당으로 일해왔다. SM3부터 SM5, SM6, QM6를 거쳐 그랑 콜레오스와 필랑트까지, 사실상 르노코리아의 세대교체를 타이어 쪽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그는 필랑트 OE 타이어 개발과 관련해 "고객들이 자동차를 타면서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 중 하나가 주유 비용과 효율성"이라며 "이 부분에 포커스를 두고 개발했다"고 말했다.
스포티한 사이즈에 걸린 뜻밖의 주문 '승차감'
20인치 휠에 편평비 45%짜리 타이어라고 하면 업계에선 핸들링용으로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사이즈가 크고 옆면이 얇을수록 조향 반응은 예민해지지만 그만큼 승차감이나 연비는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이 책임연구원 역시 처음엔 이 규격을 보고 핸들링 위주 개발을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사 미팅에서 나온 요구는 정반대였다. SUV이면서도 승용차에 가까운 승차감을 구현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개발 경력을 통틀어 흔치 않은 지시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승차감 못지않게 요구된 항목은 연료 효율이었다. 르노코리아가 제시한 회전저항(RR) 목표치는 6.1로, 앞서 QM6 개발 때도 동일한 수준이 요구됐던 값이다. 국내 타이어 업계 기준으로도 상당히 까다로운 수준이라는 게 이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실제로 완성된 타이어는 시판 중인 동급 경쟁 제품보다 회전저항 성능이 약 16%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차감을 개선하는 데는 근본적인 구조 변경이 필요했다. 트레드 밴드와 사이드월, 즉 노면에 닿는 부분과 타이어 옆면의 강성 비율을 미세하게 다시 짜는 작업이었다. 20인치 타이어 특유의 단단한 핸들링 감각은 그대로 살리면서, 자잘한 요철에서 올라오는 충격만 부드럽게 걸러내는 게 관건이었다.

르노코리아 평가팀과 세 차례에 걸쳐 실차로 함께 시험하며 값을 좁혀갔고, 이주 미세한 노면 충격에서도 부드러운 감각이 나는 지점을 찾기 위해 시험 주행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는 후문이다.
타이어로 전달되는 소음 잡아낸 비결

정숙성 개선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뤄졌다. 하나는 타이어 내부 공기 진동으로 생기는 공명음(캐비티 노이즈)이고, 다른 하나는 트레드 패턴에서 나는 마찰음이다.

캐비티 노이즈를 잡기 위해 타이어 안쪽에 스펀지 형태의 흡음재를 넣어 내부 공기 이동량 자체를 줄였다. 그 결과 200~250Hz 대역에서 비교 제품보다 약 4dB 낮은 수치가 나왔다. 패턴 소음 쪽은 컴파운드와 트레드 무늬를 손봐 500Hz 이상 대역에서 1dB 이상 낮추는 데 성공했다.

전동화 차량은 배터리가 얹히면서 차체 무게가 늘고 그만큼 타이어가 받는 부담도 커진다. 이번 개발에서는 이 점을 감안해 마모 성능을 30% 이상 끌어올린 새 컴파운드를 적용했다. 개발 기준으로 삼은 QM6 19인치 타이어와 비교하면 마모 성능은 약 117% 수준. 연간 주행거리 2만km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기존 제품보다 약 2만km를 더 탈 수 있는 셈이다. 체감상으로는 교체 주기가 1년가량 늘어나는 효과라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다만 이는 타이어 위치를 주기적으로 바꿔주는 등 정상적인 관리를 전제로 한 예상치이고, 실제 평가에서는 마모가 가장 심한 지점을 기준으로 17% 우세한 결과가 나왔다는 설명도 함께 나왔다.

우선순위에서는 뒤로 밀렸지만, 핸들링 성능도 목표치를 만족시켰다. 동적 상태의 단품 특성을 측정하는 자체 평가에서 경쟁사 제품 대비 약 102% 수준의 결과를 얻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애초 요청받았던 올 시즌 패턴 사양에 걸맞은 강설로 성능 역시 국내 시장 기준을 충족했다.
개발기간, 18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

성능은 끌어올렸는데 정작 개발기간은 짧아졌다. QM6용 19인치 타이어를 만들 때는 실물 제작·평가에만 약 18개월이 걸렸는데, 이번엔 약 12개월로 줄었다. 전체 개발기간으로 보면 약 30% 단축된 셈이다.

여기엔 2021년 도입한 디지털 트윈과 인공지능(AI) 기술이 결정적이었다. 예전 방식은 개발자의 경험에 의존해 여러 버전의 실물 타이어를 직접 만들고 차에 달아 성능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새 기술 도입 이후 축적된 시험 데이터를 학습한 디지털 트윈이 컴파운드·패턴·구조를 바꿨을 때 나타날 성능을 가상으로 먼저 그려내고 그 결과로 후보군을 좁힌 다음에야 실물 제작에 들어간다.

이렇게 확보한 예측 정확도는 실물 타이어 대비 90~95% 수준. 그 덕에 과거 3~4차례 필요했던 실물 제작·평가 횟수를 2회까지 줄일 수 있었다. 이 책임연구원은 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 실물 제작·평가 기간을 8~9개월 수준까지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변화의 밑바탕에는 완성차 업계 전반의 흐름이 있다. 신차 개발 기간을 앞당기려는 요구가 전 세계적으로 커지면서 타이어 업체들의 양산 승인 시점도 함께 당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르노코리아는 기존 4년이던 신차 개발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해 2027년부터 2029년까지 매년 신차를 한 종씩 내놓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생존을 위해서는 그 기간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위해 AI를 활용한 가상 개발이 필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실물 테스트 비중이 줄어들고, 가상 시뮬레이션 등으로 개발 속도를 단축하는 것뿐 아니라 삼성자동차 시절부터 20년 넘게 이어진 두 회사의 협업 경험이 앞으로의 개발 속도 경쟁에서도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용인=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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