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급을 둘러싼 반도체 기업 경영진과 노조의 줄다리기가 격화하면서 메모리 초호황의 과실을 어디에 배분할지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원로들 사이에서는 가격 하락과 공급 과잉에 대비할 '생존 체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메모리 '빅3'였던 독일 키몬다가 불황을 버틸 자본력과 기술 투자를 확보하지 못해 파산한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호황기에 확보한 재원을 성과급보다 차세대 기술에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독일 반도체 산업의 상징이었던 키몬다는 유럽 내 유일한 메모리 반도체 플레이어였다. 키몬다는 2006년 독일 인피니온의 메모리사업부가 분사해 설립된 D램 전문 기업으로, 출범 당시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3위까지 오르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독일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300㎜(12인치) 웨이퍼 기반 첨단 팹을 갖추고 전력 효율을 높이는 독자 공정 기술까지 확보했다. 당시 "유럽에도 메모리 챔피언이 탄생했다", "자동차 초강국이 반도체 석권을 앞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키몬다는 창업 3년 만인 2009년 파산했다. 몰락의 배경에는 반도체 다운 사이클이라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2007년 이후 전 세계 D램 산업은 대규모 증설 경쟁에 들어간 상황에서 PC·서버 시장 성장 둔화와 맞물리면서 심각한 공급 과잉이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터지며 정보기술(IT) 투자와 소비가 동시에 얼어붙었다. D램 가격은 제조 원가 아래로 추락한 데다 메모리 업체들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 직면했다.
당시 D램 가격은 치킨게임 경쟁 속에서 2007년 대비 85% 급락했다. 특히 512Mb급 제품은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메모리 반도체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라는 사실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시기였다. 키몬다는 심각한 재무 압박을 받기 시작해 2007년 3분기부터 2008년 4분기까지 누적 적자가 25억유로까지 불어났다.
문제의 핵심은 자본·기술·정책 대응력의 삼각 불균형이었다. 가격 붕괴 국면에서 치열한 출혈 경쟁이 벌어지자 키몬다는 당시로서는 가장 혁신적인 기술이었던 '베리드 워드라인(Buried Wordline)'에 기반한 차세대 D램을 앞세워 경쟁력을 회복하려 했다. 베리드 워드라인은 타 회사와 달리 칩 내부의 전기선을 실리콘 내부에 묻은 다음 더 짧고 빠르게 만들어 메모리 속도를 높이고 전기를 덜 쓰게 하려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본격적인 양산 단계에 돌입하기 전이었던 탓에 키몬다는 원가 경쟁력 확보에 실패했다. 투자 여력이 고갈된 상황에서 회사는 2008년 대만과 합작으로 세운 D램 업체 이노테라 지분 35.6%를 마이크론에 매각해 현금을 일부 확보했지만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사이 재무 상황은 급격히 악화해 2008년 회계연도 매출은 약 17억8500만유로로 전년 36억800만유로 대비 51% 감소했다. 회사는 유동성 압박과 투자 부족이 겹쳐 생산 설비와 연구개발(R&D) 조직을 축소했다. 경영진은 3000여 명의 인력 구조조정과 공장 폐쇄를 단행했으나 상황 반전에는 실패했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512Mb DDR2 D램 가격이 2007년 최고점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1기가비트 D램 가격도 급락하며 산업 전반이 적자구조로 들어갔다. 극한의 'D램 치킨게임' 속에서도 글로벌 메모리 빅3 중 유일하게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현 DS 부문) 부문은 2008년 3분기 24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각각 4600억원, 3억3800만 달러(약 5000억원)의 적자를 봤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다운 사이클 속 삼성전자의 흑자 비결로 투자 강화를 꼽는다. 불황일 때 더 투자한다는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승부수가 빛을 발한 것이다. 2008년 극심한 D램 가격 하락 국면에서도 이 전 회장은 도리어 첨단 D램 공정 전환에 더 속도를 높이며 40나노미터(nm)급 D램으로 조기 전환해 원가 개선에 성공했다. 이는 다운 사이클 기간에 경쟁사 대비 원가를 낮춰 가격 하락 압박을 흡수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또 제품 다각화와 신수요 대응도 위기를 버티는 원동력이 됐다. 당시 스마트폰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삼성전자는 PC용 메모리에 더해 모바일 메모리 공급을 확대하면서 포트폴리오 균형을 맞추는 등 매출 다변화를 꾀하면서 'D램 보릿고개'를 이겨냈다.
하이닉스는 재무적 여력이 삼성전자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에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구조조정으로 버텼다. 고정비 절감·공정 효율화를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으로 생존에 성공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 모두 공통적으로 대량 생산을 통한 단위당 고정비 분산으로 가격 하락 압박을 흡수했다"며 "시장 점유율 방어를 위해 공급을 유지하면서도 원가·효율 중심의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대응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감산에 그치지 않았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오히려 다운 사이클 국면에서도 미래 기술력 강화를 위한 투자와 공정 전환을 멈추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 점이 바로 키몬다와의 극명한 차이점"이라며 "키몬다는 금융위기 직전 충분한 금액의 전략적 R&D 투자를 지속할 자본력이 부재했고, 결과적으로 기술·제품 다양성과 경쟁력 확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키몬다의 몰락은 기술이 없어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이클 하강기에 버틸 자본력과 국가 차원의 전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독일 현지의 자체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는 HBM 초호황에 취해 있으면 안 된다"며 "다음에 다가올 다운 사이클에 대비하기 위해 R&D 투자를 통한 '기술 체력'을 비축하고, 국가 로드맵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한 관계자는 "반도체 호황을 틈타 노조가 성과급에만 매몰돼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뒷전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며 "지금의 메모리 초호황이 영원할 것처럼 단기 보상만 요구하다가는 다음 다운 사이클에서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호황기에 확보한 현금을 임직원 보상에만 소진하기보다 미래 기술과 생산성 향상에 재투자하고, 시장에 나온 우수한 반도체 기업을 선제적으로 인수합병(M&A)해 기술과 인재를 확보하는 게 내 자식 세대와 기업, 국가를 위한 훨씬 더 중요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memo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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