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재 정선(1676~1759)은 조선 500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화가로 꼽힌다. 천원권 뒷면에 작품(‘계상정거도’)이 그려진 ‘국민 화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겸재 정선전이 15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 대박'을 기록한 이유다. 당시 이 전시는 고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평생 한 번 있을 전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선 전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165점이 한꺼번에 소개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록이 불과 1년여 만에 깨졌다.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때문이다. 이 전시에 나온 작품은 총 216점.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압도적인 컬렉션을 아낌없이 펼친 덕분에 ‘역대급’이라는 찬사를 받던 호암미술관 전시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지난 14일 개막식에 참석한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도 “앞으로 다시는 보기 어려운 전시”라며 “온 국민이 이 전시를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화첩에서는 겸재가 사실적으로 묘사한 송파진(송파동·잠실동 일대)과 압구정(압구정동), 양천 관아 일대(가양동)와 양화진(합정동) 등 300년 전 서울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시화환상간'은 평생의 벗인 이병연(1671~1751)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그린 작품, '독서여가'는 겸재의 50대 자화상으로 알려진 그림이다. 1부 끝에 있는 1739년작 '청풍계'(보물)는 세로 133cm의 대작으로, 인왕산 기슭의 사당을 그린 작품이다. 겸재는 자신이 태어난 장동(지금의 종로구 청운동·효자동)에 살던 안동 김씨 집안의 후원 덕분에 화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한반도의 산천처럼 굽이치는 모양으로 꾸며진 2부 전시장에서는 겸재가 지방 행정관으로 나가 있던 시절의 그림을 소개한다. 이 중 '달성원조도'는 대구와 인연이 있는 그림으로, 하양(지금의 경북 경산) 읍내에서 대구 쪽을 멀리 바라본 풍경화다. 산수화 외의 작품을 모아 놓은 3부도 꼼꼼히 둘러볼 만하다. 특히 꽃과 새, 짐승을 그린 화훼영모화 중에서는 방아깨비를 노려보는 고양이, 오이를 등에 지고 달리는 고슴도치 등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신묘년풍악도첩의 그림에서 젊은 화가 특유의 강한 기세, 정석적인 테크닉이 돋보인다면 해악전신첩에서는 그림의 묘(妙)를 깨달은 거장의 자유분방한 붓놀림이 두드러진다. 금강산 전체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한 장에 담은 '전도(全圖)' 8점이 모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국보 '금강전도'와 가을철 금강산을 그린 '풍악내산총람'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인왕제색도'는 이번 전시에서 빠졌다. 다음달 1일 개막하는 런던 영국박물관 한국 특별전에 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의 양과 질이 압도적이라 빈 자리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올해 하반기 최고의 고미술 전시로, 전시 하나를 보기 위해 대구행 기차표를 끊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관람료는 성인 1만4000원. 전시는 12월 27일까지.
대구=성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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