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연방정부는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안경을 정부 업무공간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방안을 공식 검토하고 있다. 케이티 갤러거 호주 공공서비스부 장관은 호주공공서비스위원회에 자문을 요청하면서 "스마트안경은 정보를 기록·포착할 수 있어 정당한 프라이버시와 보안 우려를 낳는다"고 했다. 스마트안경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카메라·인공지능(AI) 기능을 탑재한 탓에 곳곳에서 '출입금지'를 당하는 수난을 겪는 중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각국에서 스마트안경을 규제하는 움직임이 확산하는 추세다. 민감한 시설의 경우 반입·착용 단계에서 제재를 가하고 일반 시설에선 동의 없는 촬영을 제한한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제품 판매·비동의 촬영을 둘러싼 법적 쟁점을 놓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안경 규제의 핵심은 카메라다. 스마트폰과 같이 촬영이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이를 알기 어렵다는 데서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스마트안경을 착용한 채 상대방을 바라보는 행위만으로도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 같은 우려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상대방이 촬영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 이를 동의할 수 있는지'에 규제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가장 규제가 강한 공간은 정부·사법시설이다. 영국·웨일스 법원을 관할하는 법원·심판원 서비스(HMCTS)는 메타 스마트안경을 들고 법원에 들어올 경우 입구에서 보관하도록 하고 퇴실할 때 돌려준다. 스마트폰은 허용하지만 스마트안경 반입은 막는다. 평소 시선과 촬영 동작을 겉으로 구분할 수 없어서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도 직원들이 연방 업무공간에서 메타 스마트안경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민감정보가 의도치 않게 촬영·전송될 수 있다는 이유다.
학교·수영장에선 '비동의 촬영'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노르웨이 오슬로시는 지난달 27일부터 모든 학교에서 스마트안경 사용을 금지했다. 호주 브리즈번시는 지난달 시립 수영장 21곳을 대상으로 상대방 동의 없는 촬영을 금지하면서 스마트안경을 예시로 들었다. 멜버른 야라시도 레저센터·보육시설·놀이터에서 스마트안경을 금지하는 방안을 조사하고 있다.
민간 사업장도 움직이는 중이다. 법보다 먼저 반입 규정을 손보면서 대응에 나선 것. 영국에선 펍·회원제 클럽·식당·극장 등을 중심으로 메타 스마트안경을 규제하는 곳이 늘고 있다. 기존에 마련해놨던 '시설 내 촬영금지' 규정에 스마트안경을 추가하는 식이다. 호주 이동통신사 옵터스는 사무실·매장에서 스마트안경을 규제하거나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면 금지보다 착용·녹화 사실을 먼저 알리고 동의를 받는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유럽 일부 국가는 한층 더 강경한 대응을 선택했다. 독일 디지털 인권단체 헤이트에이드는 지난달 메타·에실로룩소티카·현지 판매업체들을 형사고발했다. 스마트안경이 타인을 몰래 촬영할 수 있는 만큼 관련 법규를 위반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프랑크푸르트 디지털범죄 전담 검찰은 예비검토에 착수했다. 프랑스 파리 검찰도 스마트안경이 연루된 성희롱 혐의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프랑스 개인정보보호기관인 국가정보·자유위원회(CNIL)에도 관련 민원과 기업 문의가 쏟아지는 중이다.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현주 온라인안전위원회는 현재와 같은 녹화 표시등은 주변인이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면서 '더 분명하고 쉽게 가릴 수 없는 표시'와 '비동의 얼굴 자동 흐림 처리' 등을 권고했다.
다만, 장애인에 한해선 예외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마트안경이 시각장애인의 보조기기로도 쓰이고 있어서다. 스마트안경 자체를 전면 금지할 경우 장애인 접근성 문제로 옮겨붙을 수 있는 상황이다. 스마트안경 보급률이 올라갈수록 규제 쟁점도 장소의 민감도, 촬영 여부, 당사자 동의, 데이터 전송 가능성, 장애인 접근성 등으로 세분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선 교육 현장을 대상으로 규제가 집중된 상태다. 학교 시험장에서 스마트안경을 소지·반입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국가기술자격시험이 치러지는 공간에서도 반입을 막는 식이다. 다만 스마트안경 반입을 금지하는 방식의 전국 단위 규제 사례가 확인되진 않고 있다.
다만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별도 출입·착용 기준을 마련하는 사례가 늘면서 국내 기업·공공기관에도 과제가 주어진 상황. 특히 연구개발 시설이나 데이터센터는 방문객뿐 아니라 직원의 웨어러블 기기를 기존 보안규정이 포괄하는지 점검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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