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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6대 영화제 BIFF가 펼치는 ‘영화의 바다’

입력 2026-09-29 12:44  



“세계적 영화제는 대부분 바다를 낀 도시에서 열려요.” ‘영화 청년’ 김동호가 오래전 한 말이다. 그 말대로다. 5월은 프랑스 칸에서, 8~9월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 해안가에서 영화인들이 축제를 벌였다. 10월은 부산 해운대 바닷가를 바라보는 영화의전당에 레드 카펫이 깔린다.

서른한 번째 축제를 맞이하는 올해부터는 BIFF를 ‘세계적 영화제’로 부르는 데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올해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지정하는 ‘A리스트’ 영화제로 격상되며, 전 세계 단 17개뿐인 ‘A급 영화제’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 해 세계 영화 산업을 결산하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에서 BIFF의 ‘안목’을 인정받았다. 올해부터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가 오스카상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국가별 공식 출품작 외 별도 자격을 부여하는 6개 영화제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칸·베니스·베를린·토론토·선댄스 국제 영화제와 함께 BIFF가 이름을 올렸다.

해당 영화제들은 저마다 세계 영화사에서 뚜렷한 위상을 구축해왔다. 칸이 영화산업의 가장 화려한 쇼케이스라면, 베니스는 미학적 성취를 겨루는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베를린은 정치·사회적 문제의식을 품은 영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무대이고, 토론토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북미 영화 산업이 세계 관객과 만나는 시장이다. 선댄스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유지를 이어받아 다음 세대를 이끌 독립 영화인을 발굴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왔다.



쟁쟁한 영화제 사이에서 부산은 아시아 영화의 관문으로 인정받았다. 박광수 BIFF 이사장은 “BIFF가 공식적으로 전 세계 최고 영화제로 평가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열흘 간 315편 만난다

올해 BIFF는 59개국 영화 246편을 공식 초청, 영화의전당을 비롯해 부산 일원의 8개 극장에서 펼쳐진다. 이는 2019년 이후 최대 규모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 초청작만 95편에 달한다. 관객 참여형 행사인 커뮤니티비프(69편)까지 포함하면 총 315편이 스크린에 걸린다.

올해는 수요일에 개막하던 관행을 깨고 화요일로 하루 앞당겼다. 지난해 팬데믹 이후 가장 많은 23만 명의 관객이 방문하고, 통상 개막 첫 주에 관객이 몰리는 것을 고려해 관람 기회를 확대한 조치다. 개막작은 김종관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로맨틱 영화 <낮과 밤은 서로에게>가 선정됐다.

가장 주목도 높은 섹션은 BIFF가 경쟁 영화제 체제로 전환하며 지난해 신설한 경쟁 부문이다.
올해는 출품작 수준과 층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이 BIFF 프로그래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예 임하연 감독의 <그날의 태주>, 김정훈 감독의 <면도> 등 한국 감독의 신작 네 편을 포함해 히로세 나나코 감독의 섬세한 삼각관계 드라마 <비트윈 투 리버스>, 삶의 잔혹함과 희망을 동시에 그려내는 대만 중견 감독 리윈찬의 <평범하기 위하여>, 이란의 국민 감독 마지드 마지디의 <빵과 책> 등 14편이 리스트를 채웠다.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는 작품을 엄선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는 정주리 감독의 <도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화를 실사로 연출한 신작 <룩 백> 등 다섯 편이 상영된다. 세계적 감독의 신작을 소개하는 아이콘 섹션은 지난해보다 세 편 늘어난 35편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의 <피오르> 등이 포함된다.
진격의 애니메이션
올해 BIFF에선 애니메이션 장르의 상영이 눈에 띈다. K-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지난해 일본과 중국의 연간 흥행 1위를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등 관련 수요가 오름세인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K-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아니어도 애니메이션은 현재 동시대 영화계가 가장 열광하는 양식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2025·581만), <슬램덩크: 더 퍼스트>(2023·492만) 같은 해외 작품뿐 아니라 영화 <킹 오브 킹스>(2025·131만) 같은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도 의외의 흥행을 하는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 소비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BIFF는 올해 <일본 애니메이션 특별전>을 선보인다. 데즈카 오사무, 오시이 마모루 등 역 애니메이션 역사에 획을 그은 오리지널 작품 13편을 상영하는데, 일본 첫 장편 애니메이션 <백사전>(1958),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극찬한 <메트로폴리스>(2001) 등이 걸린다.
이 작품 주목해야



BIFF를 즐겨본 영화 애호가라면 ‘비전’과 ‘아이콘’ 섹션부터 찾아보곤 한다. 비전은 아시아 독립 영화의 현재와 새로운 가능성을 폭넓게 담아내고, 아이콘은 세계적 거장의 최신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올해 비전 섹션에선 2013년 BIFF ‘뉴 커런츠상’을 받은 몽골의 사히야 뱜바가 새 작품을 들고 오는 등 다양성이 커졌다. 아이콘 역시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36편을 초청했다.

<가능한 사랑> 이창동_아이콘
제8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명실상부 올해 한국 최고의 기대작이다. 계급 문제를 다루면서도 선악의 이분법을 피하고, 서로 다른 계급 간 관계가 우정과 착취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는 이창동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과 삶을 고민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박인호 BIFF 수석프로그래머는 “이창동은 인물과 공간을 서서히 탐색하며 은근한 눈길과 찰나에 스치는 표정을 통해 공허한 웃음과 냉소, 친절함과 구분 짓기, 구속과 자유 사이를 맴돈다”고 평가했다.

<피오르> 크리스티안 문지우_아이콘
올해 제79회 칸 국제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루마니아 출신인 문지우는 2007년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지 19년 만에 이 영화로 다시 한번 칸의 정상에 오르며 거장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다섯 아이를 둔 루마니아인 남편 미하이 게오르기우와 노르웨이인 아내 리즈벳 부부가 아내 고향인 노르웨이 외딴 마을로 이주하며 겪는 혼란을 그린 영화로, 다양성을 표방하는 유럽 사회가 한편으로는 특정 신념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루마니아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문지우 특유의 리얼리즘을 강조한 주제 의식, 차갑고 건조한 롱 테이크 등의 연출이 눈에 띈다.



<멈춰서다> 사히야 뱜바_비전 아시아
광활한 몽골 초원의 작은 마을 앞에 유조차가 멈춰 선다. 팬데믹으로 마을이 급작스럽게 봉쇄되면서 덩달아 격리되는 유조차 운전사와 마을 주유소 관리인 싱글맘의 삶을 통해 집단적 광기를 그린다. 광활한 몽골 초원과 격리된 비좁은 트럭의 공간 대비가 관람 포인트다.

<새> 손현록_비전 한국
학생들이 반복적으로 추락사하는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영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한 손현록 감독의 장편영화로, 2년 전 BIFF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 초청되기도 했다. 완성도가 뛰어나 ‘비전’ 섹션에 공식 초청됐다. 정지혜 BIFF 프로그래머는 영화를 본 감상으로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멜랑콜리하고, 환상과 환시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고 그 자신이 될 수 없는 세계란 낯설고 비통하다”라고 적었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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