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8년 교황 인노첸시오 11세가 여성의 무대 출연을 금지하는 등 로마에서 여성의 공연 활동이 제한되면서 카스트라토가 여성 배역까지 맡는 일도 많았다.
카스트라토는 사라졌지만 남성이 소프라노처럼 높은 음역을 노래하는 전통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20세기 이후 바로크 음악이 부활하면서 카운터테너가 전성기를 맞았고, 최근에는 아예 자신을 '남성 소프라노(male soprano)'라고 부르는 성악가들도 등장했다. 남성 소프라노라는 성부가 한국 관객에게도 낯설지만은 않다. 지난 8월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에서는 베네수엘라 출신 남성 소프라노 사무엘 마리뇨가 무대에 올랐다.

오는 11월 또 한 명의 남성 소프라노가 한국을 찾는다. 유럽 주요 고음악 축제에서 활약하는 브라질 출신 남성 소프라노 브루누 드 사(Bruno de Sa)다. 드 사는 '남성 소프라노'라는 말을 가장 실감 나게 보여주는 성악가다. 소속 음반사 워너클래식은 그를 '자연적인 남성 소프라노(natural male soprano)'라고 소개한다. 변성기를 거친 뒤에도 높은 음역이 남았고, 성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자신의 음역과 성량을 더욱 넓혔다.
활동 무대도 고음악의 한복판이다. 2019년 포츠담 상수시 음악제에서 유럽 무대에 데뷔한 뒤 바이로이트 바로크 오페라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 페스티벌, 빈 극장 등에서 활약했다. 헨델·비발디·포르포라·하세에서 모차르트까지 레퍼토리도 넓다.
그를 알린 대표 음반도 카스트라토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2022년 발표한 첫 솔로 음반 '로마 트라베스티타(Roma Travestita)'에는 18세기 로마에서 남성 성악가들이 여성 역할까지 노래했던 음악들이 담겼다. 비발디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레오나르도 빈치 등의 아리아를 21세기의 남성 소프라노 목소리로 다시 불러냈다.
그가 출연하는 무대는 10월 29일부터 11월 13일까지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6회 인천국제고음악제다. 고음악은 그저 '옛날 음악'을 연주하는 장르가 아니다. 작품이 만들어졌던 당시의 악기와 연주법을 연구해 그 시대의 소리에 가깝게 재현하는 음악이다. 현대 플루트 대신 나무로 만든 바로크 악기 '트라베르소'를 사용하고, 피아노 대신 하프시코드를 연주한다. 이를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HIP)'라고 부른다.


2020년 시작된 인천국제고음악제는 이런 역사주의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국내 대표 고음악 축제다.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예술감독 이은지)가 국내외 고음악 연주자들을 초청해 함께 무대를 꾸민다.
올해는 세 차례 공연이 열린다. 10월 29일 개막공연에는 프랑스 하프시코디스트 베아트리스 마르탱과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크 코엔 아케닌, 바로크 플루티스트 안나 베송이 출연한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그의 아들 칼 필리프 에마누엘(C.P.E) 바흐, 둘째 아들 빌헬름 프리데만(W.F) 바흐의 음악을 한자리에서 들려준다.

11월 1일에는 바로크 바이올린의 거장 아망딘 베예가 무대에 선다.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퓌어 알테 무지크 등 세계적인 고음악 단체와 활동해온 연주자다. 텔레만과 하이니헨, 로카텔리, 비발디 등 18세기 유럽 음악을 들려준다.
마지막 무대인 11월 13일의 주인공이 남성 소프라노 브루누 드 사다. 빈치와 페르골레시, 하세, 비발디, 포르포라의 오페라 아리아를 코리안 바로크 소사이어티와 부른다.
특히 이날 프로그램은 주목할 만하다.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의 아리아가 함께 구성됐다. 클레오파트라와 주디타 같은 여성 인물에서 아민타와 아르미니오 같은 남성 인물까지 한 사람이 넘나든다. 300년 전 카스트라토가 성별의 경계를 넘나들며 불렀던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가 21세기 남성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다시 살아나는 셈이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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