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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의 왕" 애플의 위기…터너스의 애플은 어떤 모습일까

입력 2026-10-05 08:00  



애플은 지난 10년간 공급망 시장에서 ‘갑중의 갑’으로 통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부품을 ‘최저가’에 구매했고 공급업체에는 공격적으로 생산능력과 재고 확보를 요구했다. 대량 구매를 무기로 가격을 낮추고 여러 공급업체를 경쟁시키면서 원가를 끌어내리는 전략이 애플 공급망 관리의 핵심이었다. ‘운영관리의 천재’, ‘공급망의 마법사’로 불리는 팀 쿡 전 CEO가 회사의 가치를 11배 이상 키운 비결이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전략을 두고 애플 공급사들이 일종의 ‘월마트 효과’를 경험했다고 평가했다. 애플이라는 거대한 고객을 얻으면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지만 동시에 애플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가격과 생산 조건에서 애플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지는 구조였다.

공급업체가 떠안은 대가는 컸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따르면 2023년 메모리 불황 당시 고객사들은 공급업체에 가격을 이전의 3분의 1수준까지 낮추도록 압박했다. 특정 기업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애플을 겨냥한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힘의 균형이 달라졌다. AI 데이터센터가 메모리와 첨단반도체 생산능력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애플마저 원하는 가격에 반도체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애플이 아니어도 반도체를 대량 구매하겠다는 고객이 줄을 섰다.

특히 애플이 아이폰에 탑재하기 위해 사가던 모바일용 D램(LPDDR)의 입지가 변했다.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저전력 D램인 LPDDR이 서버용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 협상전에서 우위가 뒤바뀌자 애플은 ‘중국’ 카드를 꺼냈다. 중국 메모리기업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해 원가 절감을 이어가겠다는 전략이었다.

애플이 ‘공급망의 힘’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진 시점에 15년간 회사를 이끌었던 쿡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쿡이 공급망과 비용 효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면 지난 9월 CEO 자리를 넘겨받은 존 터너스가 마주한 애플은 전혀 다른 숙제를 안고 있다. AI 경쟁에서는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메모리 부족은 수익성을 압박하며, 제품 혁신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도 커졌다.
‘나사 하나’도 용납 못 하는 엔지니어

터너스 취임 이후 애플 안팎에서는 ‘엔지니어 CEO’가 가져올 변화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다. 팀 쿡이 공급망과 전략, 재무 성과에 집중한 운영 전문가였다면 터너스는 사소한 기술적 문제까지 직접 파고드는 제품 엔지니어다.

취임 직후에는 엔지니어와 최고경영진의 거리를 좁히고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이는 조직개편에 들어갔다. 애플의 무게중심을 다시 제품과 엔지니어링 쪽으로 옮길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태어난 터너스는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가상현실(VR) 기기 업체에서 기계 엔지니어로 일하다 2001년 애플에 입사했다. 이후 25년간 회사를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애플맨’이다.

터너스는 전형적인 공대생이었다. 동료와 제품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그날 오전 컴퓨터로 설계를 다시 하고 직접 작업장으로 들어가 밀링머신이나 선반으로 부품을 깎았다. 오후에는 실제로 작동하는 시제품을 내놨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하고 손으로 제품으로 만들어냈다.

애플에서도 경력 대부분을 제품 개발 현장에서 보냈다. 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에 올랐고 2021년부터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전체를 총괄했다. 아이패드 전 세대 개발에 참여했고 에어팟, 아이폰, 맥, 애플워치 등 애플의 핵심 제품 개발을 이끌었다. 특히 인텔 프로세서를 사용하던 맥을 자체 설계한 ‘애플 실리콘’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터너스는 제품의 완성도에 집착했다. 한때 애플 내부에서는 제품을 얇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집중한 나머지 성능과 내구성이 희생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블룸버그는 터너스가 하드웨어 조직을 이끌면서 이런 흐름을 되돌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제품의 얇기보다 성능과 신뢰성, 내구성을 다시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애플 역시 터너스가 제품의 신뢰성과 내구성을 높이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재활용 알루미늄과 3D 프린팅 티타늄 등 새로운 소재 적용을 주도했다고 설명한다.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과거 애플 시네마 디스플레이를 개발할 당시 터너스는 공급업체와 나사 하나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애플이 요구한 나사의 홈과 공급업체가 가져온 제품이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터너스는 늦은 밤 공급업체 공장에서 확대경까지 들고 나사의 홈을 하나하나 직접 확인했다. 전직 직원들은 블룸버그에 터너스가 제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의 특성이나 낙하 시험에 적용되는 물리 법칙, 제품 무게까지 기억할 정도로 세부적인 기술에 밝다고 전했다.

기술에만 올인하지 않는 균형감도 갖췄다. 오히려 신중한 엔지니어에 가깝다. 터너스는 애플이 자동차 사업을 추진했을 때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빨아들이면서 기존 사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비전프로로 이어진 혼합현실 기기에도 우려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결국 자동차 프로젝트를 중단했고 비전프로도 대중적인 흥행에는 실패했다.

신중함이 혁신의 발목을 잡은 경험도 있다. 터너스는 과거 스마트홈 시장에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아마존 에코와 구글홈이 등장했을 당시 시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고 홈팟에 카메라와 고급 센서를 넣는 방안에도 비용을 이유로 반대했다. 결과적으로 애플은 스마트홈 경쟁에서 뒤처졌다. 터너스 역시 이 과정에 자신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완벽한 애플’ 공식 깬다
터너스가 이어 받은 애플은 어느 때보다 복잡한 숙제를 안고 있다. 공급망에서는 애플의 반도체 구매력이 흔들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앱스토어라는 서비스 수익모델이 규제와 소송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신 아이폰의 품질 문제까지 겹쳤다.

터너스의 CEO 데뷔작인 아이폰 18프로와 프로맥스 일부 제품에서는 기기가 멈추고 강제로 재부팅되는 이른바 ‘패닉풀’ 현상이 발생했다. 애플은 오류를 공식 확인했고 9월 29일 iOS 27.0.1 업데이트를 배포해 수정했다. 하드웨어 결함이나 리콜 사안은 아니었지만 하드웨어 엔지니어 출신 CEO가 취임하자마자 최신 플래그십 제품에서 품질 논란이 발생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터너스가 처음 공개한 폴더블 아이폰은 초기 제품 평가에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1999달러(270만원)에 달하는 가격과 사용 목적을 두고 폴더블 폰이 애플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AI 역시 여전히 가장 큰 숙제다. 애플은 새 시리 AI를 내놨지만 유럽에서는 규제 문제로 아이폰과 아이패드 도입이 지연됐고 중국에서도 규제 문제로 사용할 수 없다. 오픈AI 내부 자료에서는 기존 애플 인텔리전스와 연동된 챗GPT 사용 실적이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내용도 드러났다.

공급망 전략 역시 새로 짜야 한다. 마이크론은 현재 공급 부족이 2027~2028년까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적·규제 리스크도 커졌다. 지난 9월 미국 배심원단은 애플이 아이폰과 애플워치의 햅틱 기술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한화로 7조원 넘는 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애플은 항소한다는 입장이다. 최종 배상액은 향후 재판 과정에서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애플을 상대로 한 특허 사건 가운데 기록적인 규모다.

애플의 핵심 수익원인 앱스토어 사업도 규제 압박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 일반법원은 지난 7월 애플이 앱스토어와 iOS를 디지털시장법(DMA)의 ‘게이트키퍼’로 지정한 EU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DMA 위반 시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터너스가 찾은 첫 번째 해답은 속도다. 터너스는 애플의 오랜 제품 출시 공식에 가장 먼저 손을 댔다. 애플이 그동안 봄, 가을에 맞춰 공개하던 신제품 주기에서 벗어나 제품을 더 자주, 더 실험적으로 내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애플을 더 빠르고 엔지니어링 중심적인 조직으로 바꾸려는 터너스의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잡스와 팀 쿡의 애플은 ‘완벽할 때까지 기다리고 완벽하지 않으면 내지 않는’ 룰이 있었다”며 “‘실험하는 애플’로의 전환이 터너스식 혁신의 첫 시험대이자 가장 큰 차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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