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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논란에 막힌 기업 해외길…새정부 들어 해외 경제협력 사업 22건→1건

입력 2026-10-14 17:23   수정 2026-10-14 21:46

[단독] 김건희 논란에 막힌 기업 해외길…새정부 들어 해외 경제협력 사업 22건→1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해온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기반 해외 경제협력 사업이 멈춰섰다. 김건희 전 영부인 관련 통일교의 캄보디아 경협 프로젝트 청탁 의혹이 불거진뒤 정부가 신규 경협 사업을 사실상 중단하면서다. 해외 네트워크가 부족한 기업의 현지 진출은 물론 핵심광물 등 중요 자원을 확보하는 ‘가교’가 끊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내부자료에 따르면 재정경제부의 EDCF 신규 승인 건수는 2022년 21건, 2023년 22건, 2024년 22건이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 4건으로 급감한 데 이어 올해는 현재까지 단 1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7년 EDCF 출범이후 39년간 매년 15~20건 안팎의 신규 사업이 승인돼온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감소 폭이다. 정부는 기존 진행 사업에 대해서도 지속 추진 여부를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DCF기반 경제협력 사업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 장기·저리로 자금을 지원해 도로·철도·에너지·광산 등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국내 기업의 수출·투자로 연결하는 유상원조 제도다. 특히 대기업뿐 아니라 자체 해외 영업망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에게 현지 진출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미국·일본 등이 반도체, 배터리 등에 사용하는 핵심 광물을 확보하는데 경협 프로젝트를 활용하면서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도 출범당시 한국의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 K컬쳐 산업 확대, 자원 공급망 확보 등을 목표로 경제협력을 늘리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신규 사업을 멈춰세운 셈이다. 경협 현장에서는 전 정부의 정치적 논란때문에 신규 사업 자체를 하지않는 것은 과잉 대응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협을 통해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기술력은 있지만 해외 판로가 없는 기업들에게 특 유용했던게 경협 사업”이라면서 “경협 사업이 멈추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기회도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외진출 길 닦던 경협…최종 단계서 줄줄이 ‘미승인’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 40년 가까이 구축해온 경제협력 파이프라인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DCF는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DA) 수단인 동시에 정부가 상대국과 경제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국내 기업의 수주·수출·투자로 연결하는 산업정책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최근에는 핵심광물과 에너지 등 전략자원을 확보하는 경제안보 수단으로도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경협 사업 위축 충격이 기업의 해외 수주를 넘어 국가 공급망에도 영향을 줄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EDCF 관련 신규 프로젝트 검토 건수는 평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재정경제부 내 최종 단계에서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DCF는 해외 국가가 먼저 차관 및 사업을 요청하거나 정부·유관기관·관련 기업 등이 신규 프로젝트를 개발하면 최종적으로 재정경제부가 승인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2년전만해도 20건이 넘던 신규프로젝트 승인건수가 올해 1건으로 줄어든 것은 정치적 논란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승인돼 추진되고 있는 사업에 대해서도 타당성에 대해 면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미 경협 사업을 통해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 사이에서도 기존 사업이 지연되거나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EDCF 관련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지난해 4월 김건희 전 여사 및 통일교와 관련된 의혹이 제기된 이후다. 7월에는 특검이 통일교 측이 건진법사를 통해 캄보디아 개발사업 지원 등을 청탁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외교부, 한국수출입은행, KOICA 등을 압수수색했다.

업계 관계자는 “김건희 논란이후 EDCF 사업은 하면 안되는 사업으로 낙인 찍혀있다”며 “현 정권의 EDCF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극에 달해있어 앞으로도 활성화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가 신규 사업 급감을 우려하는 이유는 EDCF가 단순히 개발도상국에 돈을 빌려주는 사업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이 상대국의 철도·도로·공항·에너지 등 개발사업에 장기·저리 금융을 제공하면 이를 계기로 한국과 현지 정부 간 경제협력 관계가 형성된다. KOTRA는 현지 정부·기업과 국내 기업을 연결하고 사업 발굴과 시장 진출을 지원하며, KOICA 등 개발협력기관도 무상원조와 기술협력 등을 통해 현지 정부와 장기간 네트워크를 쌓는다. 국내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개별적으로는 만나기 어려웠던 현지 정부 관계자와 공기업, 발주처, 민간기업을 접촉해 수주와 수출, 투자 기회를 만들어간다.

이 같은 구조는 해외 영업망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에 특히 중요하다. 처음 진출하는 국가에서 기업이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대형 발주처와 직접 관계를 맺기는 쉽지 않다. 현지 사업 실적이 없으면 입찰에 필요한 레퍼런스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먼저 금융과 경협을 통해 문을 열어주면 국내 기업은 첫 사업을 수행하며 현지 네트워크와 실적을 쌓고 이를 후속 수주로 연결할 수 있다. 대기업이 대형 사업을 따내면서 설계·엔지니어링, 장비, 부품 등을 공급하는 수십~수백개의 중소·중견기업이 함께 진출하는 효과도 생긴다.

관계자들은 한국이 사업에서 손을 뗀다고 해당 프로젝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개발도상국 정부는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한국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 여러 국가와 국제금융기관에서 조달할 수 있다. 한국이 금융과 경협을 제공하지 않으면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 등의 지원을 선택하고 해당 국가 기업들이 프로젝트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경협의 주요 대상인 인프라 사업은 한 번 특정 국가의 기업과 기술이 들어가면 이후 증설과 유지보수, 기자재 교체 등 후속 사업에서도 기존 사업자가 유리하다. 초기 프로젝트를 놓치면 한 건의 수주뿐 아니라 수년에서 수십년에 걸친 후속 시장까지 경쟁국 기업에 내줄 수 있다는 얘기다.
○“경협은 ‘경제안보 전쟁’ 수단”



EDCF 위축이 더 큰 문제로 지목되는 이유는 경협이 기업의 해외진출 지원을 넘어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를 위한 경제안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는 자원 공급망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개발도상국 경협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개발금융·경제협력이 중심이 ‘일대일로’를 통해 인프라 사업은 물론 해외 구리·코발트·니켈·리튬·희토류 광산 개발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에이드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이 해외 개발 금융에 사용하는 돈만 한해에 19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중국이 선점한 핵심광물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경협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잠비아의 구리·코발트 등 광물을 대서양 연안 앙골라 로비토항으로 운송할 수 있도록 약 1300㎞의 철도와 광물항을 개량하는 데 5억5300만달러의 금융을 제공했다. 광산을 직접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원을 실어나를 물류 인프라까지 지원해 공급망 전체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일본도 비슷하다. 국제협력은행(JBIC)은 일본 기업의 해외 광산 개발과 자원 지분 취득에 직접 정책금융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칠레 국영 구리기업 코델코에 최대 4억6600만달러를 빌려줘 일본 기업의 구리 정광 장기 조달을 지원했다. 칠레 아르케로스 구리광산 개발에도 2억4800만달러를 지원하는 등 자원 개발과 안정적인 장기 수입을 정책금융으로 연결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글로벌 정세 변화를 반영해 지난해 초 ‘EDCF 중기운용방향’을 통해 EDCF를 자원 공급망 확보의 중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올해에도 EDCF 운용방향과 관련해 AI·문화와 함께 공급망을 3대 중점 지원 분야로 선정하기도 했다.

다만 정치적 논란 이후 목표와 실제 정책 추진이 반대 방향으로 가고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로봇 등 한국의 주요 첨단산업을 뒷받침할 자원 외교가 부실해 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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