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봉(사진)은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디자이너다. ‘한글 패션 전도사’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우리말을 패션에 접목해 ‘한글 패션’이라는 독창적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다. 20년 넘게 한글에 천착해온 그이지만, 그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평생 한국 패션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앞장서 온 행보다.
2026년 가을, 패션 인생 40주년을 맞은 이상봉이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섰다. 4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인 만큼 한글, 혹은 지난 40년의 패션 인생을 집대성한 무언가를 기대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을 터. 그러나 역시 이상봉이다. 그는 뻔한 길을 여지없이 비껴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담함. 그것이야말로 이상봉 패션의 매력 중 하나다.

그가 이번 무대의 전면에 내세운 것은 뜻밖에도 ‘프리다 칼로’다. 멕시코 출신 불세출의 여성 예술가 프리다 칼로. 쇼장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크기의 미디어월을 가득 채운 것은 옷이 아니라 프리다 칼로의 얼굴. 실제 프리다 칼로가 눈앞에 되살아난 듯한 강렬한 이미지. 그야말로 프리다 칼로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이상봉.
40주년 기념 패션쇼라기보다 ‘프리다 칼로 헌정쇼’라고 해도 무색할 만큼, 그는 한 여성 예술가의 삶과 사랑, 일생과 예술을 무대 전면에 끌어올렸다. 왜 하필 지금 프리다 칼로일까.

▶ 패션 인생 40주년을 맞은 올해, 왜 ‘완성’이 아니라 ‘Rebloom(다시 피어나다)’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나요?
“AI 시대가 너무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그 속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혼란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결국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어떠한 역경에도 다시 일어나는 인간의 생명력’입니다.
이번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여성 예술가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에 깊이 빠졌어요. 프리다 칼로는 불의의 사고 이후 평생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삶 자체가 굉장히 가혹했죠. 그런데도 사랑과 예술,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고통과 상처마저 예술로 끌어안았고요. 특히 그녀의 자화상이 저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그래서 프리다 칼로가 보여준 강인한 생명력과 삶에 대한 의지를 옷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가 프리다 칼로인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심각한 고민이 있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죠. AI라는 전대미문의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바꾸고 구속할지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난관 속에서도 인류는 언제나 딛고 일어났죠. '우리는 무너질 수 있지만, 얼마든지 다시 피어날 수 있다' 저는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강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패션쇼에서 말하고 싶은 주제도 바로 그겁니다.”

▶ 40년의 패션 인생 가운데 20년 넘게 한글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습니다. 한글은 이상봉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처음에는 일종의 사명감에서 시작했습니다. 2004년 프랑스 수교 행사와 관련해 문화계 인사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각 나라가 자신들의 문화를 어떻게 보여주는지 이야기하면서 ‘그렇다면 나는 한국적인 것을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렇게 2004년에 처음 한글을 시도했고,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글 패션을 전개했죠.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라면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계속 고민했습니다. 샤머니즘도 다뤄보고 불교적인 소재도 찾아봤어요. 그런데 결국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한국 문화는 한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한글의 조형성과 미학적인 가치를 하나씩 알아갈수록 ‘이것은 세계에 알려야 하는 한국 문화’라는 확신이 커졌어요. 처음에는 디자인의 소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상봉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이어온 시간이 40년이고, 한글 작업을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한글은 제게 단순한 디자인 소재가 아니라 ‘운명 같은 존재’가 됐어요. 앞으로도 한글과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만큼은 놓지 않을 겁니다.”
▶ 이상봉 패션에는 한글뿐 아니라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수많은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하지 만 전통을 그대로 옮기는 것과 ‘이상봉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죠. 어디에서 그 경계를 찾으십니까?
“저는 디자인에서 무엇보다 ‘이야기’, 즉 서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고 자란 한국 디자이너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이야기는 결국 내가 살아온 곳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죠.

한글을 중심으로 작업했지만, 해외에서 한글만으로 한국을 보여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청, 아리랑, 태극기 등 우리 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함께 가져오기 시작 했어요. 옷에 쓰인 단어나 문장도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각각의 이미지와 문장에는 제가 전달하고 싶은 상징과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한복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전통을 어떻게 현재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느냐’입니다. 그래서 한복의 여밈 구조부터 치마와 저고리, 조선시대의 다양한 복식, 심지어 군복까지 폭넓게 살펴봤습니다. 지난 40년의 아카이브와 지금의 소재, 그리고 앞으로의 패션을 연결해 ‘한국적인 것이 어떻게 현재를 넘어 미래의 예술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 40주년 이후 이상봉 패션이 향할 곳이 궁금합니다.
“저는 10년 넘게 청소년 패션 꿈나무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신명을 담아 하는 일이기도 해요. 고교패션-고교 모델 컨테스트를 매년 열고 있고,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이주배경학생 꿈토링스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패션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뭉클합니다. 제가 그들에게 대단한 것을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살아온 경험을 통해 조금이라도 용기와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40년 동안 제가 패션을 통해서 해 온 일이, 단지 옷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글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문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이제는 다음 세대가 자신의 꿈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입니다. 제가 살아온 40년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작은 계기라도 된다면,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최효안 예술 커뮤니케이터(가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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